늙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들라면, 건강한 무릎 연골과 살아 있는 감성이라고 답하겠다. 세상 사람들이 자주 꼽는 돈과 친구도 필요하지만, 나에게는 연골과 감성의 뒷순위다. 돈은 생존하기에 적당한 양만 있으면 되고, 친구가 없으면 혼자서도 잘 놀 줄 알면 된다. 중요한 건 세상을 늘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인 감성이다.
<감성에 물주기>는 무척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다. '일상기록공작가'로 자처하는 공혜진 님이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할 수 있는 비결 100가지를 보여준다.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 우리 삶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커다랗게 나선형을 그리며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어제와 같은 패턴을 그리는 듯하지만, 어제 그려진 원과는 결코 만나지 않는 나선형이다. 그래서 오늘 걷고 있는 나선형의 길을 쓸고 닦고 물을 주는 일이 어떤 것인지 <감성에 물주기>는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여성의 섬세한 감성으로 가득하다. 남성이 가지지 못한 것이므로 '부럽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지은이 공혜진 님은 특이하다. 보통의 여자와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음미하며 간직하는 버릇이 있다. 책에 소개된 백 가지 중에 '하루 종일 하나만 보다'라는 게 있다. 맘이 복잡하고 생각이 굳어질 때 하는 놀이로 하루 종일 하나의 대상을 정하고 그것만 바라보며 관찰한다. 그렇게 온 정신을 집중해서 그림이나 글로 기록하면 자신과 대상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고양이의 하루를 대략 20분 간격으로 그린 그림이 소개되고 있다.
그 외에도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놀이가 많다.
다 같이 돌자/동네여행상품기획자, 기록하니 이름이 되다/만물작명가, 엄마와 그리다/모녀그림단, 뒤에 달린 눈을 보다/뒤태애호가, 초등학교 문방구를 가다/문방구부흥회회원, 새벽에 나가다/숨은새벽발굴자, 미행하다/추리미행애호가, 난 지난 밤에 일어난 일을 알고 있다/꿈기록가, 하이쿠로 말하다/아류하이쿠연습생, 장소를 선물하다/장소포장사, 운동장을 보다/운동장관찰자, 공상하다/에디슨추종자, 흘린 수박씨를 찾다/도깨비감투탐닉자, 전단지를 받으러 다니다/전단지재활용가, 그림자에 그리다/응달무늬연구가, 네 잎 클로버를 차자/돌연변이연구가, 일상에서 떠오른 상징/일상암호해독가, 부적을 그리다/사람잡는공무당, 벽 소설을 쓰다/벽소설가, 오늘 안에 색 있다/하루의색연금술사, 공기를 포장하다/기운담은공기포장사, 수만 따라가다/나만의숫자신봉자, 김서림화를 그리다/김서림화가, 종이인형 놀이를 하다/소박한종이인형제작자, 이름을 부르다/지구아무개호명가, 자로 만나다/수치기록가, 마담이 되다/화장기없는마담, 무엇이든 물어보다/찌질한검색가, 재활용을 수거하다/소문난고물상, 별것을 다 나누다/일상선물배포자, 나 홀로 시상식을 하다/공스어워드
어른들 놀이도 주변에 널려 있다. 이 정도면 아이들 이상으로 재미있게 놀 수 있다. 이 책은 혼자서도 잘 노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침서라고 해도 좋겠다. 그러나 '홀로'는 관계로 연결된다. 결국은 타자와 관계 맺기가 소중하다는 알게 된다. '홀로'와 '함께'는 나란히 나아가야 한다. 글, 그림, 사진 솜씨가 뛰어난 지은이가 궁금하다. 모으고, 기록하고, 수치화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
따스한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와 숨어 있는 의미 발견, 이것이 무미건조한 일상을 반짝이게 하는 비결이다. '감성에 물주기'라는 표현대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메말라가는 감성에 생기를 불어넣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화분에 물을 주듯이 생생하게 살아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의미를 띠고 나에게 다가온다. 지루하거나 따분한 틈이 없다.
몇 달 전에 장만한 스마트폰의 카카오스토리에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올리고 짧은 글을 붙여보고 있다. 한 친구가 보고는 답을 보내왔다. 띄워주기란 걸 알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 감성에 대해 칭찬 듣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늙어서도 나를 살아 있게 해 주는 건 지식도 돈도 아니다. 핵심은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감성만 살아 있다면 세상은 처음처럼 신기하고 사랑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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