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번개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다
큰 죄 짓지 않고도 장마철에는
내 몸에 번개 꽂혀 올까봐
쇠붙이란 쇠붙이 멀찌감치 감추고
몸 웅크려 떨던 시절이 있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비가 된 나는
천둥 번개가 무섭지 않다
큰 죄 주렁주렁 달고 다녀도
쇠붙이 노상 몸에 달고 다녀도
그까짓 것 이제 두렵지 않다
천둥 번개가 괜시리 두려웠던
행복한 시절이 내게 있었다
- 무서운 나이 / 이재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천둥 번개에 놀란 아이들이 마리아의 방으로 뛰어들어오자 마리아는 'My Favorite Things'를 불러주며 안심시켜준다. 아이들과의 서먹한 관계가 이 일을 계기로 친밀하게 변한다.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재미있었던 장면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뻔뻔해진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수치심도 없어지고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경이와 놀라움도 숨어버린다. 그렇다고 현명해지거나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나도 어느새 두 아이의 할아비까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철면피가 되어가는 내 나이가 무섭다. 단순히 늙는다는 것보다 그저 심드렁해지는 나이, 세상사에 닳고 닳아 감동이 없어진 나이가 슬프다. 여기저기서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외쳐대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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