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석 달 만에 산에 올랐다. 집 가까이 있는 백마산이다. 걸어서 30분이면 입구에 닿는다. 이곳에 이사 온 지 4년이 되었는데 백마산을 찾은 것은 이번이 겨우 세 번째다. 곁에 있는 걸 너무 소홀히 했다.
경안교에서 백마산에 올랐다가 양벌리 대주아파트로 하산했다. 거기서부터는 동네를 지나고 경안천변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산길 6km에 2시간 30분, 평지길 9km에 2시간 30분, 총 5시간 걸었다.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힘들었으나 이 정도면 내 걸음으로는 적당한 길이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코스가 백마산 외에 칠사산과 국수봉도 있다. 모두 아담한 산들이다. 산만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을 지나고 강도 지난다. 움직이지 않아서 그렇지 걸으면 참 좋다. 멀리만 욕심내지 말고 가까이 있는 길을 즐겨야겠다.
백마산 가는 능선에 서면 광주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광주 외곽은 지금 전철 공사가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판교에서 여주까지 가는 복선 전철이다. 12월에 개통되면 서울 나가는 길이 훨씬 편리해질 것이다. 양재동으로 당구 치러 나갈 때도 훨씬 가볍게 갈 수 있다. 이천, 여주쪽 산도 이 전철을 이용하면 된다. 기대가 크다. 광주역 주변 벌판에는 아파트가 들어서는 공사도 한창이다. 몇 년 뒤면 이곳이 광주의 신 주거지가 될 것 같다.
생각은 머리가 아니라 발바닥으로 하는 것이라고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걷는 단조로운 행위가 생각의 물꼬를 트게 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사실을 아는데 대단한 재능이 필요한 건 아니다. 누구나 걸어보면 알게 된다. 가능하면 혼자 걸어야 하고 아무 목적이 없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마음속 얼음이 녹고 달콤한 샘물이 솟아나는 경험을 한다. 그 물이 몸과 마음을 적시면 세상이 반짝이면서 다가온다. 살아있음의 기쁨을 만끽한다.
그렇긴 하지만 걸음에 거창한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걷는다는 건 그냥 나 혼자 노는 것이고, 즐기는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이 놀이보다 더 재미있는 건 찾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