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의 진달래가 활짝 폈다. 옛날에 산을 쏘다니며 놀다가 배가 출출해지면 한 움큼씩 따먹던 꽃이다. 그때는 참꽃이라 불렀다. 어느덧 50년 전 일이다.
진달래는 봄이 오면 제일 먼저 산을 붉게 물들인다. 아직 나무의 초록잎이 나오기 전이다. 고운 색감이지만 화려하지는 않다. 오히려 슬픔과 처연한 감상이 묻어 있는 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민족의 성정과 닮았다. 가장 한국적인 꽃을 고르라면 진달래가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오덕 선생이 '진달래'를 쓴 때는 1950년대 중반이었다. 막 전쟁이 끝난 힘들고 고달팠던 시대였다. 헐벗은 강산에 어김없이 피어나는 진달래를 보며 선생은 가날픈 희망이나마 붙잡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진달래가 한창인 산길을 걸었다.
이즈러진 초가집들이 깔려 있는 골짝이면
나뭇군의 슬픈 산타령이 울리는 고개이면
너는 어디든지 피었었다.
진달래야
너는 그리도 이땅이 좋더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헐벗은 강산이
그리도 좋더냐?
찬바람 불고 먼지 나는 산마다 골짝마다
왼통 붉게 꾸며 놓고
이른 봄 너는 누구를 기다리느냐?
밤이면 두견이 피울음만 들려 오고
낮이면 흰 옷 입은 사람들 무거운 짐 들에 지고
넘어 가고 넘어 오는 산고개마다
누굴 위해 그렇게도 붉게 타느냐?
아무리 기다려도 뿌연 하늘이요,
안개요, 바람소리 뿐인데,
그래도 너는 해마다
보리고개 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갈 때
배가 고파 비탈길을 넘어질 뻔하면서
두 손으로 너를 마구 따먹는 게 좋았더냐?
진달래야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차라리 시들어지는
네 마음, 나 같이 약하면서도
약하면서도....
- 진달래 / 이오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