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남자의 탄생

샌. 2015. 11. 11. 10:28

한 개인의 성장사를 통해 한국 남자의 의식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지은이의 유소년기 개인적 체험을 중심으로 한 인성 형성 과정이 펼쳐진다. 부제가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이다.

 

요사이 젊은 남자는 그렇지 않지만 전통적 한국 남자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똑같이 닮으면서 그 과정이 반복된다. 아들을 편애하는 어머니의 역할도 더해져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가 된다.

 

지은이는 한국 남자의 특징을 '동굴 속 황제'라 부른다. 한국의 가정에는 아버지 공간과 어머니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상과 하의 위계질서로 구분된 공간은 아이의 무의식에 지속해서 영향을 끼친다. 거기에 어머니의 배타적인 사랑은 아이를 자기중심적이고 독단적이게 만든다. 분리된 자아를 가진 동굴 속 황제로 자랄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한국 남자들은 언제 어떤 공간에 있든지 황제이길 원한다. 황제였던 아버지는 몸소 황제다운 언행을 보여 주었고, 어머니는 황제로 받들고 길렀다. 그러나 그는 동굴 속에 갇힌 황제이다. 자기애와 권위주의의 동굴에 갇힌 그는 주위 사람들과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가 낳은 인간형이 바로 동굴 속 황제다.

 

가정에서만 동굴 속 황제가 길러지는 게 아니다. 학교나 군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말은 동굴 속 황제를 완성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힘의 숭상과 신분제는 가정, 학교, 군대에서 공통으로 습득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학교에 다니면서 작성하는 생활계획표가 동굴 속 황제를 어떻게 강화하는지 보여준다.

 

첫째, 달성하지도 못할 계획표는 죄의식을 기른다. 모범적 인간에 대한 열등감이다. 둘째, 비천한 아이로 만든다. 계획표를 실천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하고 자아존중감을 잊게 한다. 셋째, 타집단을 배척하는 패거리의 일원으로 만든다. 스스로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한 사람은 그 빈 공간을 타집단에 대한 적대감으로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적인 심리가 확대되면 민족주의, 국가주의로 연결된다. 교사나 장교가 이걸 의식하지 않았겠지만 부지불식간에 권위적인 한국 남자로 기르는데 한몫을 하는 것이다. 이런 장치들에 의해 한국 남자는 경쟁과 힘의 원리에 길들여진다. 아버지의 힘을 모방하는 데서 시작해 아버지와 국가와 동등해지고 나중에 가정에서는 가부장적 태도와 연결된다.

 

별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동굴 속 황제의 특징으로 지은이는 빨리빨리 병과 허영심을 든다. 둘에는 근원적으로 '나는 남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자기중심주의 의식이 깔려 있다. 빨리빨리 병을 단순히 성격이 아니라 한국의 독특한 성장 환경에서 찾는다는 점이 특이하다. 책에는 나오지 않으면 또 다른 병폐인 외모지상주의도 그 원인을 여기서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권위주의 속에서 태어난다. 권위주의의 연쇄적 중층적 거미줄에 걸려 있다. 동굴 속 황제의 이중 구조를 걷어내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길은 없을까? 지은이의 해결책은 바로 '내 안의 아버지'를 살해하라는 것이다. 나 자신이 얼마나 동굴 속 황제인가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마음에 형성되어 있는 어린 시절의 우상, 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아버지를 살해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 긍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결론 부분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이 떠올랐다. 대구 경북은 새누리당의 본거지로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지역이다. 개인이 동굴 속 황제로 자라듯 특정 지역민도 비슷한 의식 구조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 사람과 정치 얘기를 하면 절벽을 대하는 것 같다. 동굴 속에 사는 황제라는 비유가 적절하다. 그 지역 역시 마음속의 아버지를 살해할 때 건설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한다.

 

<남자의 탄생>(지은이: 전인권)은 한국의 남자들이 한 번 읽어볼 만하다. 지은이가 말하는 어린 시절은 우리 세대의 공통적인 경험이다. 내가 누구이고 내 정체성은 무엇인지 지은이를 따라가며 분석해보는 작업은 의미가 있다. 워낙 체질화되어 마음먹는다고 쉽게 바뀌지야 않겠지만 아는 것만도 변화의 첫걸음이다. 다음에는 <여자의 탄생>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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