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독고다이

샌. 2015. 11. 16. 09:27

소설가 이기호 씨의 산문집이다. 신문에 연재한 칼럼이라 글 하나의 분량이 짧다. 200자 원고지 3장 정도로 한 페이지에 다 들어간다. '한 뼘 에세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호흡이 짧은 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이 책을 읽으며 단문의 매력에 푹 빠졌다. 워낙 재미있어선지 하나만 더 읽어보자 하다가 몇 시간이나 붙잡혀 있었다. 사소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힘이 대단했다. 글은 전체적으로 경쾌하며 재치가 넘친다.

 

책 제목인 '독고다이'는 '獨 GO DIE'라 쓰여 있다. 다른 작가의 책 제목을 차용하자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정도의 의미로 읽힌다. 원래 독고다이는 특공대(特攻隊)의 일본어 발음이다. 글에는 아내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오는데 무척 지혜로운 여성인 것 같다.

 

글 중에서 하나를 골라 보았다.

 

매대

 

아내는 백화점 매대 앞에만 서면 고난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곤 한다. 내 기억으로 아내는 단 한 번도 백화점 진열대에 걸려 있는 옷을 산 적이 없다. 아내는 언제나 매대에서, 아주머니들과 치열한 어깨싸움을 하며, 마치 김장독 묻을 땅을 파헤치듯, 쌓인 옷들 아래로, 아래로, 부지런히 손을 움직인다. 매대에 나와 있는 옷들이란, 거의 대부분 이월된 상품이거나 팔리지 않는 옷들이다. 남들에게 선택되지 못한 것들을 다시 거두는 손길이란 어색하고 쑥스러울 법도 하건만, 아내는 오히려 그것이 더 즐겁다고 했다. 때때로 좋은 것들이 나오거든. 그런 걸 발견하는 게 진짜 쇼핑의 묘미지. 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내가 매대 앞에 서 있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아이의 내복에서부터 양말까지, 아내는 오랜 시간 공들여, 꼼꼼하게 이 옷과 저 옷을 비교해가며, 옷장을 채워나갔다. 갑자가 썰렁해진 날씨 탓에 어제는 아내가 백화점 매대에서 아이의 겨울 점퍼를 골라왔다. 양면으로 된 점퍼를 1만 5천 원에 샀다며, 서재까지 들어와 활짝, 웃었다. 나는 그냥 잘 했네, 하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뒤, 물을 마시러 부엌에 나갔다가 우연히 안방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엄마가 미안해, 잘 빨고, 잘 다리면 괜찮을 거야, 엄마가 미안해.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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