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논어[211]

샌. 2016. 9. 6. 11:33

번지가 농사짓는 법을 배우려고 한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는 늙은 농사꾼만 못하다." 채소 가꾸는 법을 배우려고 한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는 늙은 밭갈이꾼만 못하다." 번지가 나간 후에 선생님 말씀하시다. "하찮은 애야. 번지는! 윗사람이 예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존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리에 살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믿음직하면 백성들이 진정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사방 백성들이 아기를 업고서도 모여 올 것인데, 농사짓는 법은 어디다 쓰려는지!"

 

樊遲 請學稼 子曰 吾不如老農 請學爲圃 曰 吾不如老圃 樊遲出 子曰 小人哉 樊須也 上好禮 則民莫敢不敬 上好義 則民莫敢不服 上好信 則民莫敢不用精 夫如是 則四方之民 襁負其子而至矣 焉用稼

 

- 子路 4

 

 

선비 대접을 받으며 사신 큰할아버지는 글 읽고 벗들과 고담준론을 나누며 일생을 사셨다. 어렸을 때 큰집엘 가면 사랑방에는 늘 한복에 갓 쓰고 계신 큰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농사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셔서 갑자기 비가 내려도 마당에 널린 곡식조차 거둘 줄 몰랐다. 아예 관심이 없으셨을 것이다.

 

농사를 소홀히 여기는 듯한 공자의 말씀을 접하니 큰할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옛 선비들이 농사를 천한 것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면 공자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번지가 공자에게 농사짓는 법을 물었다는 것도 생뚱맞지만, 그런 번지를 소인(小人)이라고 폄하하는 공자의 반응도 어리둥절하다. 아마 공자는 농사법을 연구하는 시간에 군자(君子) 공부를 하는 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훌륭한 정치가 이루어지면 농사 같은 지엽적인 문제는 절로 해결된다고 본 것 같다. 그러나 농사짓는 것도 사람되는 공부 중 하나가 아닐까, 아쉽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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