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찬지름 들지름 / 송진권

샌. 2016. 11. 7. 10:17

찬지름 들지름 들이 서울 갑니다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강변에 모랫벌에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가

여름내 김매고 땀 흘려 가꾼 참깨 들깨 들이

찬지름 들지름이 되어 소주병에 담겨

서울 가는 기차를 탑니다

 

마른 나무 강변말 해바라기 선 집

들지름 발라 김 구워 주면

미어지게 먹던 막내를 생각합니다

날달걀 깨서 찬지름 떨어뜨려 밥 비벼 주면

다른 반찬 없이도 한 그릇 해치우던 맏이를 생각합니다

 

- 찬지름 들지름 / 송진권

 

 

가을은 아프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지은 농작물을 갖고 오는 것도 죄스럽다. 가을이 되면 모시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더해진다. "나도 이제 따스한 밥 얻어먹고 싶다." 가을은 불효를 자각하고 속울음을 삼키게 되는 계절이다.

 

충청도에서는 '찬지름 들지름'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자식을 향한 모정이 '찬지름'이라는 말 속에 담겨 있다. 그러나 지금은 철없던 막내나 맏이가 아니다. 찬지름이 결코 고소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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