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모퉁이 토담 밑에
한 페기 두 페기 세 페기
생야는 구덩이 파고
난 강낭알 뗏구고
어맨 흙 덮고
한 치 크면 거름 주고
두 치 크면 오줌 주고
인진 내 키만춤 컸다
"요건 내 강낭"
손가락으로 꼭
점찍어 놓고
열하고 한 밤 자고 나서
우린 봇다리 싸둘업고
창창 길 떠나 피난 갔다
모통이 강낭은 저꺼짐 두고
"어여-"
어매캉 아배캉
난데 밤별 쳐다보며
고향 생각 하실 때만
내 혼차
모퉁이 저꺼짐 두고 왔빈
강낭 생각 했다
'인지쯤
샘지 나고 알이 밸 낀데....'
- 강냉이 /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선생이 쓰신 여러 편의 동시가 발견되었다. 그래서 출간된 것이 <삼베 치마>라는 동시집이다. 2011년이었다. 이 시는 선생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선생의 문학적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이 났던 1950년이면 선생 나이 열세 살 되던 해다.
선생의 모든 글은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동시도 마찬가지다. 가난 속에서도 맑게 빛나는 동심을 만날 수 있다. <삼베 치마>에 실린 몇 편의 다른 동시도 옮겨 본다.
골목길에 우물이
혼자 있다
엄마가 퍼 간다
할매가 퍼 간다
순이가 퍼 간다
돌이가 퍼 간다
우물은 혼자서
물만 만든다
엄마도 모르게
할매도 모르게
순이도 못 보게
돌이도 못 보게
우물은 밤새도록
물만 만든다
- 우물 / 권정생
왕골논 안짝 집
새댁이 치마
노랑 곱슬 삼베 치마
새댁이 물동이 이고
너무 바쁘게 바쁘게
가기 때문에
삭삭삭삭
소리가 나요
찡기네 할매 치마
올 굵은 무삼베 치마
찡기가 업힌 채 오줌을 싸도
금방 말라 버려요
홰나무 그늘에
잠간 앉았다 일어나면
무릎까지 말려 올라가
바닥 뚫린
광우리 같애요
- 삼베 치마 / 권정생
올통볼통 골목길
바우네 아빠가
소 등에 거름 싣고 가고
탈싹탈싹 소가
똥을 싸 놓고
바둑이 검둥이가
꼬리 치며 뜀박질하고
명히야가 무우 나부랭이 들고
엄마 뒤따라오고
모두 가고 오고
해님도 저네 집에
꼭꼭 가 버리면
골목길엔 가랑잎 하나
도르르 장난짓 한다
- 골목길 / 권정생
빤들 햇빛에
세수하고
어덴지 놀러 간다
또로롤롱
쪼로롤롱
띵굴렁
띵굴렁
허넓적
허넓적
쪼올딱
쪼올딱
어덴지
어덴지
참 좋은 델
가나 봐
- 개울물 / 권정생
감자는 잠꾸러기다
흙 속에 묻힌 걸
캐내도 안 깬다
숟갈로 껍데기를
벗겨도 안 깬다
삶아 먹어도 잠만 잔다
- 감자 / 권정생
까맣고 예쁜
운동화
몇 달째 두고두고
벼르셨던
울 아버지 읍내 장까지 가서
사 오신
"학교 갈 때만 신으라"
풋고추 두 되와
달걀 한 꾸러미
검정 고무신 두 켤레 값
어머닌
"돌멩이 차지 마"
학교 갈 때만 운동화
집에 있을 땐 헌 고무신
운동화 차 -
고무신 차 -
고무신과 운동화가
번갈아 나를 태우고 다닌다
집에 오면
마루 밑에 고무신이
기다려 있고
학교 갈 땐
운동화가 댓돌 위에서
떠날 준비를 한다
- 운동화 / 권정생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몇 평생 다시 살으라네 / 이오덕 (0) | 2017.10.09 |
---|---|
끼니 / 고영민 (0) | 2017.09.30 |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 백석 (0) | 2017.09.17 |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마광수 (0) | 2017.09.09 |
석유장수 / 심호택 (0) | 2017.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