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나는 행복합니다

샌. 2018. 7. 4. 10:24

내 산 게 억울하다. 왜 그리 미련하게 일만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래 살았어도 자식한테 효도 받지도 못한다. 요새 젊은 사람들 재미나게 사는 것 보면 인생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고향에 내려갔을 때 하신 어머니의 직설적인 말이다. 이런 내색을 안 하셨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다.

 

작년에 동생이 낙향해서 어머니를 곁에서 모시고 있으니 지내시는 환경은 좋아졌다. 어머니는 동생이 내려간 뒤로 평생을 하시던 농사일을 그만두셨다. 밭에 나가는 대신 마을회관에서 종일 노신다. 예전 같이 식사 준비도 걱정 안 하시고, 혼자서 드시는 일도 없다. 그런데 전에는 듣지 못했던 말씀을 하신다.

 

어머니는 여장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억척스레 농사일을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모든 것이 당신의 책임이었고 몫이었다. 자식에게 큰소리 칠 권리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한순간에 일을 놓고 종속적인 위치로 떨어졌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동생의 견해는 다르지만, 내 진단은 그렇다.

 

객관적인 여건으로 보면 어머니는 지금 제일 행복해야 마땅하다. 마을에는 독거노인이 많다. 자식이 자주 찾아온다지만 직접 모시는 것만 하겠는가. 쓰실 돈도 넉넉하고, 형제간의 갈등도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의 표정에는 예전 같은 생기가 없다. 세상만사는 하나를 얻으면 잃는 것도 반드시 생긴다. 어느 쪽에 포인트를 두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라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오해하는 경우가 잦다. 나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서 사니까 행복하리라고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 사람에게는 가시가 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고민과 아픔은 있다. 내 기준으로 보니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다. 자식이라도 어머니의 내면세계까지 이해하기는 어렵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시각에서 자식을 보는 한 거리는 멀어진다. 인생의 문제는 누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노년이 되면 대체로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가정과의 비교도 심해진다. 그런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행복이냐 불행이냐를 좌우한다. 나이는 오히려 자존감과 반비례하는 것 같다. 이것이 노년의 슬픔이다. 몸과 정신이 쇠약해지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의존적이 된다.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개 그런 과정을 밟는다.

 

요즈음 한화이글스 야구를 즐겨 본다. 금년 들어 팀 성적이 좋아지면서 더 관심이 높아졌다. 한화 경기는 박진감 있는 내용과 더불어 응원하는 관중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경기장에서 항상 울리는 노래가 '나는 행복합니다'이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 다른 조건이 없다. 그저 환화 팬이라서 행복하다는 이 노래를 들으면 괜히 가슴이 찡해진다.

 

우리 사는 것도 이런 야구장 분위기를 닮을 수는 없을까. 홈런에 환호하면서 기뻐하고, 설령 지더라도 "나는 행복합니다"를 노래할 수 있다면 인생은 훨씬 재미날 것이다. 전에는 천진한 낙관주의를 경멸했다. 그러나 노년이 되면 바보 같은 낙천성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거기에 행복의 비결이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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