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분이 죽음을 앞둔 노인들과 대화를 나눈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고 한다. 그분이 제일 많이 들은 다섯 가지 후회는 다음과 같다.
1. 내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다.
2. 그렇게 열심히 일 할 필요가 없었다.
3.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지 못했다.
4. 친구들과 연락하며 살았어야 했다.
5. 행복은 결국 내 선택이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조사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사람 살아가는 껍데기는 달라도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눈을 감기 전 생을 돌아보며 이 정도 아쉬움은 누구나 가지리라 본다. 알면서도 실천 못 하는 것, 그게 인생 아니겠는가.
'내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다'는 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탓이다. 우리는 생의 많은 부분을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남의 눈에 보이는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껄떡대는가. 대신 나 안의 나는 초라하게 쪼그라든다. 삶의 종착역에 가까워지면서 과연 무얼 위해 살았는지 회한에 잠긴다. 알짜배기는 버려두고 부스러기를 줍느라 허둥댄 자신이 허망하다.
'행복은 결국 내 선택이었다'는 옳은 말이다. 누구나 어떤 환경에서도 행복할 자격이 있다. 즉,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좋은 조건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걸 바라느라 행복을 걷어차 버렸다. 그때는 모른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 일부러 불행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행한 사람은 많다. 불행의 원인은 상당 부분 개인 너머에 있다는 뜻이다. 행복은 내 선택이지만, 내 선택을 넘어선 어찌할 수 없음의 영역도 있는 것이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어찌할 수 없음의 영역의 비중이 커진다. 예고하지 않고 찾아오는 변고도 잦다.
편법이 통하는 불공정한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은 한계가 있다. 공정사회라야 자신에게 정직함이 곧 행복으로 연결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적 갈등을 겪는다. 우리에게는 나만 행복하면 나쁜 놈이 되는 불의한 시대도 있었다. 호주는 우리나라에 비해 제도적으로 행복의 바탕이 마련된 나라다. 그래서 앞에 든 다섯 가지의 후회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내 선택이었다'는 맞는 말이다. 어떤 조건에서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행복의 첫째 조건은 '남과 비교하지 않기'다. 경쟁에 길들여진 우리는 남을 의식하며 산다. 더구나 잘난 타인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는 늘 자아 불만족 상태에 빠진다.
자신에게 정직하면서 나의 삶을 살자면 헛된 욕망의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행복은 결국 내 선택이었다." 인생은 상당 부분 자신의 책임이다. 죽을 때까지도 남 탓을 하며 원망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되지 말자. 지혜로운 자만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