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축복 받은 삶

샌. 2018. 7. 12. 14:12

노년층에게 롤모델이 되면서 부러움을 받는 두 분이 있다. 송해와 김형석 선생이다. 송해 선생은 92세로 KBS의 '전국노래자랑' 사회자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높다. 90세가 넘어서도 바깥 활동을 하며 돈을 벌어 오니 남편으로는 최고일 것이다.

 

철학 박사인 김형석 선생은 지식층 사이에 화제다. 올해 99세니 백수(白壽)를 맞았다. 그런데도 저술과 강연으로 젊은이보다 더 바쁘게 지내신다. 재작년에 나온 책 <백 년을 살아보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오래 살면서 건강할 뿐 아니라 인간적 성숙의 표본이 된다는 점에서 선생은 존경을 받고 있다.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 하나둘씩 무릎을 꿇는다. 질병이 찾아오고 정신은 쇠해진다. 두 분은 특별한 사람이다. 육체나 정신적 능력에서 보통 사람을 압도한다. 두 분의 사례는 위안과 희망을 주지만, 우리가 따라가기에는 너무나 높이 있는 분들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며 뭇 사람들의 존경까지 받는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분 삶의 중심에는 공통으로 일이 있다. 젊을 때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했다면, 노년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선생은 65세부터 75세까지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불렀다. 물론 이 경우도 경제와 육체적 능력이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노년도 주위에는 많다.

 

최근에 나온 모 잡지에 김형석 선생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선생의 축복 받은 삶 뒤에 있는 숨은 노력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일부 내용을 옮긴다.

 

 

- 며칠 전 선생님의 99세 백수를 기념하는 좌담회가 있었습니다. 행사장으로 들어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나이를 먹는 건 경계선을 넘는 일이죠. 백수(白壽)를 누린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지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나 자신과 싸워야 하는 일이 부담스럽기도 해요. 솔직히 90 고개를 넘고 나니 내 건강과 노력의 한계를 거듭 느끼게 돼요. 피곤하고 힘들고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은 요즘 인사가 '힘드시죠?'예요."

 

- 오래된 폴더폰이지만 강연 요청 전화가 끊임없이 오네요. 지난해에는 생애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셨고, 세금 납부액도 가장 많았다고 들었어요.

"미국 사는 딸이 그래요. 아들 딸 사위 다 정년퇴직했는데 아버지 혼자 일하신다고. 그래서 난 행복해요. 재미있는 건 전에는 아들딸들이 용돈을 줬거든요. 식사를 하면 으레 자기네가 계산하고. 그런데 요새는 '돈 버는 아버지가 내세요' 합니다. 그때마다 여전히 가장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흐뭇해지죠."

 

- 60부터 시작된 집필과 강연의 절정이 30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99세까지 이어지리라 예상하셨나요?

"90까지는 예상을 했지만, 더 연장되고 있어요. 나이 드니 김태길 교수는 이야기의 맥을 놓치고, 안병욱 교수는 귀가 나빠지더군요. 내가 겪어보니 눈, 귀 중에 선택하라면 듣는 걸 택하겠어요. 앞을 못 봐도 철학자 시인이 되지만, 듣지 못하는 사람 중에 사상가가 나온 적이 없지요. 다행히 나는 지금도 보청기를 안 써요."

 

- 백 년을 사셨으니 저희가 궁금해 마지않는 생애의 비밀을 다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사람의 속마음을 훤히 본다거나 미래에 생길 일을 이미 알아내는 예지력을 갖고 계실 것 같아요.

"신은 사람에게 벽 너머의 일을 볼 줄 아는 능력은 주지 않으셨죠. 그저 짐작만 할 뿐이지 그런 건 백 년이 아니라 이백 년을 살아도 알 수 없어요. 올겨울에, 내년 봄에 내가 어떻게 될지 어떤 속단도 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철학을 통해 삶의 섭리를 터득해 나가죠. 백 세가 돼도 스물다섯처럼 막막할 때가 많아요. 철학은 인간에 대해 알려주지만, 인간이 처한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해요. 그러면 종교가 해결을 해주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 답을 성실한 생활에서 찾았어요."

 

- 장수는 큰 복이며 실버 사회로 진입한 이 시대에 만인의 롤모델이 된 점도 큰 복이 아닐까 싶은데요.

"80 넘은 제자들이 내 강연에 와서는 '선생님 120세까지 사실 거예요'라며 격려해요. 그럼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들게 사는 데 20년이나 이 고생을 더 하라고?' 그래요. 남들은 몰라요. 내가 지팡이 없이 걷기 위해, 이 나이에 강연 준비하기 위해 매일매일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요. 오로지 곁에서 오래 산 가정부만이 그 외로움을 알지요."

 

- 현재의 삶에 만족하십니까?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재혼을 했을 텐데...(웃음) 최선을 다하고 있고,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으니 만족하지요. 만족의 원동력은 일이예요. 잠자는 것 먹는 것 빼고는 일에만 집중해요. 다음주에도 열흘 동안 내리 강의가 잡혀 있어요."

 

- 여자 친구와 종종 데이트도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20년 넘게 병중에 있던 아내를 떠나보냈어요. 오랫동안 혼자 지낸다는 걸 아는 제자가 많아요. 제자도 80이 넘었으니 이젠 그냥 친구가 됐어요. 요담에 나이 들어보면 알 텐데 80대까지는 남자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안병욱 선생이 생전에 한 호텔 커피숍 단골이었는데 하루는 거기서 일하던 아가씨가 결혼한다고 주례를 부탁하는 거예요. 응 그래 히야지, 했는데 그다음부터는 커피 맛이 예전만 못하더랍니다(웃음)."

 

- 요즘 교수님이 가장 염려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고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좀체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 증상이 오지 않기를 바라곤 하죠. 이름과 전화번호를 잊어버리고 나면 그다음엔 형용사들이 떠오르질 않아요.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지게 되는 거죠. 얼마 전 병중에 있는 K교수를 찾아갔는데 '김 교수, 이게 몇십 년 만이야'라며 엉뚱한 인사를 해요. 오십 세 이후의 우리 모습을 잊은 겁니다. 제가 '우리가 백 세가 되도록 살 줄 몰랐지?'라고 했더니 '우리가 그렇게 오래 살았나?' 하면서 놀라는 표정을 지어요. 함께 웃기는 했지만 이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친구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아서요. 머지않아 나도 그렇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 건강을 위해 무엇을 실천하십니까?

"하루의 신체 리듬을 고려해 생활합니다. 매일 6시에 기상해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늙은 사람에겐 생활 자체가 운동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2층 내 방과 1층 거실을 오르내리며 몸을 많이 움직이려 하죠. 생각할 것이 있을 때는 앉기보다는 서서 하고, 하루에 50분 이상은 집 근처 야산에서 산책으로 시간을 보내죠. 또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일주일에 세 번씩 구립 체육센터에 나가 수영을 해요."

 

- 백 년의 삶에서 비롯된 지혜를 들려주세요.

"60세부터 제2의 마라톤을 시작하세요. 공부도 좋고 취미도 좋아요. 90까지는 자신을 가지고 뛰십시오. 80에 끝나더라도 할 수 없고요. 나더러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고달팠지만 행복했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하겠습니다. 남을 위해 살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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