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자야오가(子夜吳歌) / 이백

샌. 2020. 2. 4. 17:24

장안도 한밤에 달은 밝은데

집집이 들리는 다듬이 소리 처량도 하구나

가을바람은 불어서 그치지를 않으니

이 모두가 옥관(玉關)의 정을 일깨우노나

언제쯤 오랑캐를 평정하고

원정 끝낸 그이가 돌아오실까

 

長安一片月

萬戶擣衣聲

秋風吹不盡

總是玉關情

何日平胡虜

良人罷遠征

 

- 子夜吳歌 中 秋歌 / 李白

 

 

1936년, 함흥에서 만난 백석(白石)과 진향(眞香)은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어느 날 진향은 서점에서 <자야오가>라는 제목의 당시 선집을 사서 백석에게 보여주었다. 책을 훑어보던 백석은 미소를 머금고 진향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 당신에게 아호를 하나 지어줄 거야. 이제부터 '자야'라고 합시다!"

 

이렇게 해서 '자야'라는 애칭이 생겼고, 어쩌면 동진의 자야라는 여인처럼 평생을 기다리는 숙명으로 살아가도록 예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불교에 귀의하면서 천억 대의 길상사 부지를 시주하고, 평생 백석을 그리며 살았다.

 

지금 자야가 쓴 산문집을 보고 있다. '자야'라는 이름이 생기게 된 사연을 설명하는데 이백의 '자야오가'가 등장한다. 그녀는 덧붙여 이렇게 쓰고 있다.

 

"허약한 몸은 바람 부는 대로 구름 가는 대로 숙명을 좇아 허우이허우이 움퍽질퍽 방황하기만 했다. 저멀리 높은 곳 아주 멀리서 빛나는 사랑의 혜성, 바로 당신께 사로잡히어 일평생을 살아가게끔 마련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당시 자야는 바로 당신의 여인, 당신의 소망의 전부였다. 당신의 사랑하는 '마누라'가 옛 작품 속의 주인공 '자야'와도 같은 뜻이 높고 굳은 지조와 미덕을 갖추기를 바란 까닭도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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