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가벼운 금언 / 이상희

샌. 2020. 1. 29. 13:14

- 기적을 믿니?

 

이렇게 낡은 손으로 쓰는

약속을, 사랑을 너는 믿겠니?

빈 식기食器를 햇볕에 널고

오늘은 가벼운 금언을 짓기로 한다.

하루에 세 번 크게 숨을 쉴 것,

맑은 강과 큰 산이 있다는 곳을 향해

머리를 둘 것,

머리를 두고 누워

좋은 결심을 떠올려 볼 것,

시간의 묵직한 테가 이마에 얹힐 때까지

해질 때까지

매일 한 번은 최후를 생각해 둘 것.

 

- 가벼운 금언 / 이상희

 

 

젊었을 때 늙은 내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었을까?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젊을 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그래, 잘 익어가고 있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여줄까? 아니면 실망 가득한 얼굴로 씁쓸하게 바라볼까? 가끔 그런 게 궁금할 때가 있다.

 

'맑은 강과 큰 산이 있다는 곳을 향해 머리를 둘 것'이라는 시인의 금언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이어서 '좋은 결심을 떠올려 볼 것'이라고 했다. 늙었어도 이런 금언 하나쯤은 가슴에 간직하며 살고 싶다. 옛날처럼 곱게 쓴 손글씨로 책상 앞에 붙여놓아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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