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적을 믿니?
이렇게 낡은 손으로 쓰는
약속을, 사랑을 너는 믿겠니?
빈 식기食器를 햇볕에 널고
오늘은 가벼운 금언을 짓기로 한다.
하루에 세 번 크게 숨을 쉴 것,
맑은 강과 큰 산이 있다는 곳을 향해
머리를 둘 것,
머리를 두고 누워
좋은 결심을 떠올려 볼 것,
시간의 묵직한 테가 이마에 얹힐 때까지
해질 때까지
매일 한 번은 최후를 생각해 둘 것.
- 가벼운 금언 / 이상희
젊었을 때 늙은 내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었을까?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젊을 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그래, 잘 익어가고 있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여줄까? 아니면 실망 가득한 얼굴로 씁쓸하게 바라볼까? 가끔 그런 게 궁금할 때가 있다.
'맑은 강과 큰 산이 있다는 곳을 향해 머리를 둘 것'이라는 시인의 금언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이어서 '좋은 결심을 떠올려 볼 것'이라고 했다. 늙었어도 이런 금언 하나쯤은 가슴에 간직하며 살고 싶다. 옛날처럼 곱게 쓴 손글씨로 책상 앞에 붙여놓아야 할까 보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백석 (0) | 2020.02.09 |
---|---|
자야오가(子夜吳歌) / 이백 (0) | 2020.02.04 |
아귀들 / 정현종 (0) | 2020.01.23 |
나이 / 이븐 하짐 (0) | 2020.01.15 |
그거 안 먹으면 / 정양 (0) | 2020.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