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에
코끼리가 이사를 왔다
걸을 때마다
쿵쿵
천정이 울린다
아래층에는
토끼 아줌마가 산다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
깡충깡충
뛰어 올라온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들이 산다
발소리가 날까 봐
살금살금
뒤꿈치를 들고 걷는다
- 위층 아래층 / 한현정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끔 아래층에서 항의를 받았다. "네, 조심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뭘, 그 정도를 가지고"라며 마땅찮아 했다. 이제 늙어서 둘만 남게 된 지금은 가끔 위층에 연락한다. "잠을 못 자요. 조용히 좀 해 주세요." 공손한 대답과 달리 위층의 속마음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한다.
인간은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본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가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남에게는 역지사지를 요구하지만, 내가 역지사지하는 데는 인색하다. 코끼리와 토끼 아줌마 사이 어디쯤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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