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나 광주에서는
비가 온다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비가 온다는 말은
장흥이나 강진 그도 아니면
구강포쯤 가야 이해가 된다
내리는 비야 내리는 비이지만 비가
걸어서 오거나 달려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어떨 때 비는 싸우러 오는 병사처럼
씩씩거리며 다가오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그 병사의 아내가
지아비를 전쟁터로 보내고 돌아서서
골목길을 걸어오는
그 터벅거림으로 온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새색시 기다리는 신랑처럼
풀 나무 입술이 보타 있을 때
산모롱이에 얼비치는 진달래 치마로
멀미나는 꽃내를
몰고 오시기도 하는 것이다
- 비가 오신다 / 이대흠
농경사회에서는 자연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비나 바람에 대한 표현이 발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비 이름만 해도 수십 가지를 헤아린다.
실비 / 안개비 / 이슬비 / 보슬비 / 부슬비 / 가랑비 / 가는비 / 여우비 / 는개 / 모종비 / 못비 / 웃비 / 장대비 / 작달비 / 채찍비 / 소나기 / 단비 / 약비 / 바람비 / 큰비 / 개부심 / 궂은비 / 억수장마 / 건들장마
비가 내린다는 표현도 여러 가지다. 내린다 외에 온다, 쏟아진다, 퍼붓는다, 흩날린다, 뿌린다, 간질인다, 때린다 등이다. 그 외에도 찾아보면 더 있을 것이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 현상은 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날씨는 직접적인 몸의 느낌이 아니라 일기 예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비의 종류를 구분할 필요성도 없어졌다. 비 이름이 아니라 몇 mm라는 수치로 판단한다. 자연에 대한 감수성의 퇴화는 문명이 우리에게 준 어두운 그늘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비가 어떻게 오시는지 알지 못한다. 관심도 없다. 어제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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