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별일 읍지 / 정수경

샌. 2020. 6. 11. 11:44

누구냐 니째여? 시째라고? 느덜은 목소리가 똑같어. 전화소리는 더 못 알아 보것어. 교회여. 목사님이 죽어도 교회 와서 죽으랴. 오는 길에 행사장 들러서 치료도 받았어. 당뇨에 좋다는디 댕긴지 얼마 안돼서 그란지, 당이 안 떨어져야. 자꾸 댕기믄 좋아 진당깨 빼먹지 말고 댕기야 긋어. 거기 가서 치료 받은깨 감기는 그만 한디, 인제 살만햐. 사람들이 가믄 기분 좋게 놀아줘. 젊은이들이 참 싹싹햐. 느들은 나 그렇게 기분 좋게 못해줘야. 미안 하니깨 치약 같은 거 하나씩 팔아줘. 어떤 이는 거그서 파는 약 먹고, 안마기 치료도 받고 했다는디 당이 그짓말처럼 떨어졌댜. 피도 맑아지고. 내가 무신 돈이 있간디. 비싼 약 같은 건 안 사니깨 걱정 말어. 야 근디 느 아들 잘 있다지야? 내가 새벽마둥 기도햐. 무탈하게 당겨 오라고. 별일 읍시 잘 댕겨 올겨. 목사님 아덜도 해병대 갔는디 잘 있댜. 이서방도 별일 읍지야? 그려~, 잉~ 들어가라.

 

- 별일 읍지 / 정수경

 

 

조금 전에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우리 통화는 짧다. "별일 없지요?" "여기도 어젯밤에 비가 오고 서늘해졌어요." "가들은 내려갔어요?" "네, 다 잘 있어요." "마을회관은 아직 문을 안 열었어요? 조심하세요." "네, 생신 때 봬요." 어머니도 단답형이다. 통화 시간을 보니 딱 1분이 걸렸다.

 

그러나 딸과 어머니의 통화는 좀 다른 것 같다. 사소한 일상의 얘기를 터놓고 나누는 게 부럽다. 대신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아내와 장모님을 보면 그렇다. 늙은 부모에 대한 안쓰러움이 그런 식으로 표현된다. 누구나 다 늙는다. 마지막은 영원한 이별이다. 지금 듣는 평범한 목소리가 얼마나 귀한지 나중에 가서야 알아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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