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영국의 노동자들에게 / 셸리

샌. 2020. 5. 14. 08:20

영국의 노동자들아, 무엇 때문에 그대들을 업신여기는

지주들을 위해 밭을 가는가?

그대들의 폭군들이 입을 사치스런 옷을

무엇 때문에 힘들이고 근심하며 짜는가?

 

무엇 때문에 나서 죽을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지켜 주는가?

그대들의 땀을 짜내려 드는

아니 그대들의 피를 마시려 드는

저 배은망덕한 게으름뱅이들을

 

영국의 부지런한 자들아, 무엇 때문에

많은 무기와 사슬과 채찍을 만드는가?

고통을 모르는 이 게으름뱅이들은 그것으로

그대들의 강요된 노동의 생산물을 약탈할 텐데

 

그대들은 여가, 안락함, 평온, 피난처, 음식,

부드러운 연인의 향기를 누리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값비싼 고통과 근심으로

그대들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대들이 뿌린 씨를 다른 사람이 거둔다네

그대들이 찾아낸 재산을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네

그대들이 짠 옷을 다른 사람이 입는다네

그대들이 만든 무기를 다른 사람이 들고 있다네

 

씨를 뿌려라 - 그러나 폭군이 거두지 못하게 하라

재산을 찾아라 - 그러나 사기꾼이 모으지 못하게 하라

옷을 짜라 - 그러나 게으름뱅이가 입지 못하게 하라

무기를 만들어라 - 그러나 그대들을 지키기 위해 들어라

 

- 영국의 노동자들에게 / 셸리

 

 

셸리(P. B. Shelley, 1792~1822)는 영국의 낭만파 시인이다. 그러나 낭만파라는 이름에서 오해하면 안 된다. 셸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채 자연과 인생을 찬미하지 않았다. 반대로 자본과 권력의 폭압에 맞서 싸운 사회개혁가며 아웃사이더였다. 급진적 사상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출판사에서 내길 꺼렸다.

 

셸리가 활동하던 19세기 초는 자본가에 저항하는 노동자의 투쟁이 불붙고 있었다. 자본은 정치 권력과 결탁하여 노동자의 고혈을 빨아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던 때에 셸리의 외침이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었을 것이다.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셸리는 노동자의 편에 서서 싸웠다.

 

셸리는 타고난 반항 정신의 소유자였다. 일신의 안일과 관습을 거부한 결과 그의 일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더구나 불의의 사고로 나이 서른에 세상을 떴다. 셸리 같은 사람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런 세상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기본 틀이 변한 것은 아니다. 내 눈앞의 이윤만 좇다가는 자본주의의 덫에 걸려들기 쉽다. 2백 년과는 다른 차원에서 노동자의 각성이 요구되는 시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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