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메멘토 모리

샌. 2020. 7. 4. 12:32

로마 시대 때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개선하면 환영 퍼레이드를 했다. 당사자는 마치 최고 권력자나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이때 장군 옆에 탑승한 노예가 개선 행진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장군에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외쳤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잔칫날에 재 뿌리는 격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이런 관습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게 대단하다.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잘 나갈 때 도리어 겸손하게 행동하라. 교만하지 말라."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한다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의식은 현재 삶에 대한 성찰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메멘토 모리'와 비슷한 말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있다. 여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유대의 다윗 왕이 궁궐에 있는 금 세공사에게 명령했다. "나를 위해 반지를 만들되, 내가 승리를 거둘 때 너무 교만하지 않고 내가 시련에 처할 때 절망하지 않을 글귀를 새겨 넣어라." 세공사는 멋진 반지를 만들었지만 적당한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지혜롭기로 소문난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을 찾아가서 부탁했다. 솔로몬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페르시아 왕에 얽힌 다른 버전도 있다.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기쁠 때는 슬프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만드는 물건을 만들어오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은 며칠을 고민한 끝에 반지 하나를 만들어 바쳤다. 그 반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메멘토 모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의 유래에는 개선장군이나 왕 같은 대단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러나 잘 나갈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이 말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새기고 있어야 할 경구가 아닐까.

 

밤중에 깨서 두 시간 정도 눈을 뜬 채 있었다.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으면서 귀는 예민해진다. 요사이는 그런 날이 잦다. 마음 다스리는 방법을 이렇게 저렇게 써 보는데, 그중 하나가 '메멘토 모리'다. 죽음을 생각하면 세상사의 많은 부분이 하찮게 여겨진다. 죽음 앞에서 안달하거나 집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바람에 흩날리는 티끌이 아니겠는가.

 

삶은 죽음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더욱 분명히 보인다. 죽음의 의식은 삶의 시야를 넓혀준다. '메멘토 모리'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한계를 깨닫는다. 겸양해지면 함부로 살 수 없다. 무지, 탐욕, 애착에 휘둘리는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너나 나, 우리 모두는 가련한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고 '메멘토 모리'가 허무주의는 아니다. '메멘토 모리'는 삶을 사랑하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나와 이웃을 이해하고 관용하는 마음가짐이다. 의기양양할 때 나를 낮추고, 의기소침할 때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중용'을 지켜주는 균형추 같은 역할을 '메멘토 모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하지 않을까. 개선장군에 딸린 노예나 다윗 왕의 반지는 내 마음속새겨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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