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에 있을 때 자괴감이 컸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엄청난 벽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임을 안 맡거나 보충수업을 거부하는 등 나는 고작 소극적 저항만 할 수 있었다. 고백하건대 아이들을 신나게 가르쳐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제도권 교육에 실망한 일부 학부모는 대안학교를 택하기도 한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눈을 감고 실상을 외면한다.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현실을 수용하고 체념한다. 잘못된 길이란 걸 알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사실은 비극이다.
세계에는 우리와 다른 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나라도 많다. 유럽의 교육 제도, 그중에서도 독일의 교육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률 1위의 지옥 나라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젠 교육열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강수돌 선생이 쓴 책에서 '학교가 가르치지 않는 것'이라는 글을 보았다. 역으로 학교가 가르쳐야 할 것들을 짚은 것이다. 아이들을 경쟁시키고 줄 세우기 하는 악행에서 우리는 언제 벗어날까? 정부나 국민의 관심은 오로지 경제일 뿐, 교육의 근본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선생의 글을 옮긴다.
학교가 가르치지 않는 것 / 강수돌
첫째, 공부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한 삶이란 것을 일관되게 가르치지 않는다.
둘째, 대학이란 그 자체로 공부의 끝이 아니라 비로소 '큰 공부(大學)'를 시작하는 곳이라는 점을 가르치지 않는다.
셋째, 우리 사회가 '상중하' 라는 사다리 질서로 되어 있어 , 우리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깨 놓고 보면 결국은 상층부로 진입하여 기득권을 많이 차지하려는 것이라는, 삶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넷째, 학교와 부모는 아이들이 '인재'가 되고 '영재'가 되고 '천재'가 되는 것을 바라지만, 이런 인재, 영재, 천재와 같은 말들이 결국은 아이들을 삶의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 써먹기 좋은 자원, 즉 수단으로 보는, 잘못된 철학에 기초해 있음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섯째, 초중고에서 수백 번 반복하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만, 진정으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여섯째, 초중고 학생들도 단지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뜻에서 미숙한 학생이 아니라, '나날이 자라는 과정에 있는 하나의 인격체'임을 가르치지 않는다.
일곱째, 각종 시험에 대해 무조건 잘 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실상 이런 시험 문제야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잊어 버릴 것이고 나아가 참된 삶에 별로 필요도 없는 허황된 것들이 대부분이란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다.
여덟째, 입시 경쟁이 결국은 기업들이 써먹기 위한 노동력 경쟁으로 연결되고, 노동력 경쟁은 결국 상품 경쟁, 생존 경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학교는 가르치지 않는다.
아홉째,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타인에 대해 친절하고 우애와 환대의 정신을 갖는 것이 교과서 내용을 외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학교는 일관성 있게 가르치지 않는다.
열 번째, 개인적으로 정직하고 우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을 넘어, 사회질서 자체가 더 이상 사다리 질서가 아니라 '원탁형 질서'로 되어야 사람이 참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학교는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는 더 이상 주어진 사다리 질서 속에서 극히 일부의 출세와 성공을 위한 통로여서는 안 되며,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사람답게 살도록 도와주는 삶의 공간이어야 한다. 더 이상 노동력의 관점이 아니라 사랑의 관점에서 일관성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아이들을 '감옥 속의 죄수'로 취급하지 말고 '책임성 있는 방목'을 실천해야 한다. 사랑의 관점이란 개인적 차원에서는 우애나 연애로 나타나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환대나 연대로 나타난다. 우애나 연애, 환대나 연대가 흘러넘치는 '행복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적 교육열에 파묻혀 학교가 미처 가르치지 못했던 열 가지를 의식적으로 가르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그 과정 자체는 힘들겠지만, 동시에 행복한 여정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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