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43]

샌. 2010. 11. 8. 11:48

순임금이 그의 스승인 승에게 물었다.

"도를 터득하여 소유할 수 있을까요?"

승이 답했다. "네 몸도 네 소유가 아니거늘

어찌 네가 도를 소유할 수 있겠는가?"

순임금이 물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소유란 말입니까?"

승이 답했다. "이것은 천지가 너에게 맡겨놓은 형체다.

생명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놓은 음양의 화합이다.

본성과 운명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놓은 순리다.

자손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놓은 허물이다.

그러므로 가도 갈 곳을 모르고

처해도 머물 곳을 모르고

먹어도 맛있는 것을 모른다.

천지는 성대히 발양하는 기(氣)이니

어찌 체득하고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舜問乎丞曰

道可得而有乎

曰 汝身非汝有也

汝何得有夫道

舜曰

吾身非吾有也 孰有之哉

曰 是天地之委形也

生非汝有

是天地之委和也

性命非汝有

是天地之委順也

孫子非汝有

是天地之委채也

故行不知所往

處不知所持

食不知所味

天地之强陽氣也

又胡可得而有邪

 

- 知北遊 6

 

인간사 대부분의 갈등이나 싸움의 원인은 소유욕에 있다고 생각된다. 소유욕이란 물질 외에도 권력, 명예, 사랑 등을 독점하려는 욕망이다. 소유욕은 인간의 과시욕이나 인정욕구와도 관련되어 있다. 더 많이 소유한 자만이 타인으로부터 주목하고 또 자신의 뜻대로 주변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유욕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소유욕은 생물의 생존에 불가결한 요소다. 무엇이든 지나치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다람쥐는 겨울을 지낼 도토리를 모은다. 그러나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이상을 가져가진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타인의 몫을 뺏아 자기 것으로 만든다. 지나친 부가 악덕인 것은 가난한 자에게 돌아갈 몫을 혼자서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소유욕에 불이 당겨지면 욕망의 한계가 없다. 이런 탐욕은 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 사이에도 심각한 문제다.

 

주변에서도 소유욕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례를 자주 본다.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다른 사람을 구속하려고 하는 데서 마찰이 생긴다.부부 사이, 부모 자식 사이에 이런 마찰이 많다. 사랑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에 불과하다. 내 욕망을 상대에게 전이시키는 폭력이다. 사랑의 탈을 쓴 소유욕은 상대를 불행하게 만든다.

 

장자는 내 소유란 애초에 없다고 한다. 내 몸도 나의 것이 아니다. 생명도 나의 것이 아니다. 하물며 다른 것들은 말 할 필요도 없다. 물질이든 사람이든 단지 스쳐지나가는 관계맺음일 뿐이다. 천지가 잠시 나에게 맡겨놓은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하나에 집착하여 아둥바둥하면서 고통을 자초한다. 천지가 생명을 거둬갈 때에야 내 것이라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음을 진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살아서 깨달을 수 있었다면 인생을 훨씬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유토피아란 본능으로서의 인간의 소유욕이 적절한 수준에서 조화를 이룬사회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공산사회의 이상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번성이 공산주의의 몰락을 재촉했지만 만약 시대 상황이 달랐더라면 어떻게 변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인류 의식이 더 진화하게 되면 분명 새로운 사회 체제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때는공기를 개인적으로 소유하려 하지 않듯이 땅이나 재화 역시 그렇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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