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비바리움

샌. 2021. 11. 29. 12:48

 

인간의 삶을 시니컬하면서 재미나게 그린 영화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거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인생을 한 꺼풀 벗겨낸 실상은 어쩌면 이 영화와 같은 악몽인지 모른다.

 

'비바리움'은 은유로 가득하다. 그러나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채는데 큰 수고를 요하지는 않는다. 톰과 젬마는 결혼 후 살 집을 알아보러 부동산 회사에 들린다. 마틴이라는 직원을 따라 주택 단지에 들어가 한 집을 소개받지만 단지 밖으로 나갈 길을 잃어버린다. 똑같은 집들이 사방으로 끝간 데 없이 펼쳐진 세트장이다. 탈출할 온갖 방도를 써 보지만 실패한다.

 

난데없이 박스로 아이가 배달되면서 영화는 우리의 결혼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 초반에 탁란으로 크는 뻐꾸기가 나오는데 이 가족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가 제기된다. 톰은 탈출하기 위해 집안은 소홀히 한 채 마당을 파내려간다. 이 대목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적이다. 남자가 평생을 일에 몰두하지만 -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이든 무엇이든 - 결국 제 무덤을 파는 것이다.

 

고단한 현실 탈출과 미래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삶은 시지푸스의 형벌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시스템 속의 사소한 일원일 뿐이다. 거대한 세트장인 주택 단지처럼 우주라는 무대도 누군가가 만든 시뮬레이션의 하나인지 모른다. 우리는 응당 그러해야 한다는 듯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지지고 볶다가, 죽어간다. 쓸데없는 삽질로 비유되는 노동, 소비해야 하는 소비, 무료한 일상의 반복이 이어진다.

 

'비바리움(vivarium)'의 뜻은 '과학적 연구를 위한 동물사육장'이다. 이 말에서도 영화가 말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거대한 프로그램 속에 갇혀 있는 가련한 존재인지 모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주의 마스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 표정 없이 내뱉는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리고 인간은 하나 같이 똑 같은 삶을 반복하며 살아갈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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