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마리 퀴리

샌. 2021. 11. 16. 10:55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는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그것도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각각 받았다. 뿐만 아니라 남편인 피에르 퀴리도 노벨상을 받았고, 그녀의 딸인 이렌과 사위들도 노벨상을 받았다. 2대에 걸쳐 무려 다섯 명의, 여섯 개의 메달을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단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갖고 있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결과다.

 

'마리 퀴리'(원제는 Radioactive)는 위대한 과학자면서 선구적인 여성이었던 마리 퀴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는 1934년에 퀴리가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퀴리는 남성 중심의 당시 과학계에서 아웃사이더였다. 그녀는 과학 연구만이 아니라 여성을 무시하고 진입을 막는 장벽과 맞서 싸워야 했다. 더구나 공부를 하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온 폴란드인이었다.

 

퀴리가 남편과 공동 연구로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면 거의 막노동 수준이다. 하얀 실험복을 입고 시험관을 만지는 우아한 광경과는 거리가 멀다. 피치블랜드 광석 10t을 빻아 분별결정법을 수 천회 거쳐야 겨우 라듐 0.1g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변변한 실험실이 없어 환기도 안 되는 창고 건물에서 연구를 해야 했다. 과학에 대한 열정이나 기존 관념에 맞서는 당당한 도전 정신에서 퀴리의 에너지는 엄청났다.

 

퀴리가 방사능 물질을 다룰 때는 위험성이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런 보호 장구도 없이 수십 년 동안 방사선에 노출된 결과로 마리 퀴리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뜬다. 딸 이렌도 마찬가지였다. 남편도 방사선에 의해 몸이 허약한 상태였는데 마차 사고로 일찍 유명을 달리한다. 당시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방사능 물질이 인기여서 라듐이 들어간 소금, 담배, 치약, 초콜릿, 화장품 등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아주 귀해서 소량이어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방사능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마리 퀴리에게는 이렌(Irene)과 이브(Eve) 두 딸이 있었는데, 첫째인 이렌은 어머니의 과학적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남편이 죽은 뒤 마리 퀴리에게 이렌은 남편을 대신하는 동반자였는지 모른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마리와 이렌은 X-레이 장비를 실은 트럭을 몰고 전장에 나가 부상 입은 병사들을 구한다. 심지어는 노벨상으로 받은 메달까지 내놓으며 프랑스를 위해 헌신한다. 이렌도 물리학을 전공하고 남편과 공동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이렌 역시 방사능 과다 노출로 50대에 세상을 뜬다. 반면에 둘째 딸 이브는 작가와 피아니스트가 되어 103세까지 장수했다.

 

어릴 때 읽은 위인전 제목은 <퀴리 부인>이었다. 당연히 '마리 퀴리'라는 이름으로 불러줘야지 누구의 부인으로 부르는 것은 마리 퀴리가 제일 싫어 했을 전근대적인 명칭이다. 파리 대학이 마리 퀴리를 학생으로 받아줬지만 당시에는 여성의 대학 입학은 거의 불가능했다. 더구나 과학은 여성에게 맞지 않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여성이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식에서 수상 연설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논란도 있었다. 이런 장벽을 뚫고 자기의 길을 꿋꿋이 간 마리 퀴리는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다.

 

영화에서 마리 퀴리역을 맡은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는 훌륭했다. 딸 이렌으로 나온 안야 테일러 조이를 '퀸스 갬빗' 이후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 눈 부분 특징이 워낙 뚜렷해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마리 퀴리를 생각나게 해 준 고마운 영화였다.

 

 

 

1905년에 찍은 마리 퀴리와 두 딸 이렌과 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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