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작가의 산문집으로 제목에 낚이면 안 된다. 아니 낚여서 도리어 더 큰 만족을 느낄지 모른다. 오랜만에 시원하고 상쾌한 글을 읽었다. 답답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작가의 의지가 놀랍다. 본인 추스리기도 힘들 텐데 억압받는 사람에 대한 연대와 정의감이 불꽃처럼 뜨겁다. 또한 글에서 반짝이는 위트와 유머는 작가 내면의 깊이를 말해준다.
작가는 몸과 노동의 가치를 삶으로 실천한다. 2년 가까운 녹즙 배달원과 카페 아르바이트 생활이 글의 소재가 되고 있다. 방 안에서 머리만 굴려서 쓰는 글이 아니라, 육체로 부딪쳐 나간 싱싱한 이야기다. 화끈한 행동파의 살아 있는 글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비슷한 삐딱이로서 글 내용에 공감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스트라이크 존을 넓히고 싶다"는 바람은 이번 대선 정국에서도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그런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작가는 글 여러 곳에서 아버지와의 갈등과 애증 관계를 표출한다. 가슴이 짠해지는 사연들이다. 상처는 인간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여기서도 확인한다. 어쨌든 글로 접한 작가의 내면은 쓰라린 상처와 슬픔, 분노 등을 하나로 녹여내는 용광로와 같아 보인다.
<육체 탐구 생활>에는 좋은 글들이 많지만, '무혈의 테러리스트' 중 일부 대목을 옮긴다.
"멀쩡한 애가 왜 그러고 사냐."
녹즙을 배달하고 카페에서 서빙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이 이 말이다. 대학원을 휴학하고 다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 전에도 멀쩡한 애가 왜 커피를 타고 사냐, 네가 커피나 나르고 다닐 사람이냐, 라는 말을 좋은 뜻에서 해주신 분들이 종종 있었는데 사실 이건 아무리 좋은 의미라도 굉장히 폭력적인 말이다. 멀쩡하지 않은 사람이나 커피나 타고 녹즙이나 배달하는 거라는 이 공고한 오해, 커피 마시고 녹즙 배달할 사람 따로 있다는 이야기라 이 말은 폭력적이다. 그리고 자신을 누가 날라주는 커피 마시고 누가 갖다 주는 녹즙 받아먹어 마땅한 사람이라고 당연스레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도착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바로 그런 무심함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어떤 카스트를 탄탄히 하는 접착제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의 시장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자본주의에서 사람 사는 질서라고 칼같이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나처럼 시장 가치가 없는 사람과는 별로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런 분들과는 마구 척지고 싶다. 있는 대로 척지고 싶다. 평생 척지고 싶다. 만나봤자 서로 별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확실하게 척지고 사는 게 피차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
... 고등학교 같은 거 때려치우고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것, 최근에는 번듯한 직장 안 갖고 안 벌고 안 쓰면서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하는 식으로 이 사회의 스트라이크 존을 조금씩 넓히는 데 나의 하찮은 삶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결국 나의 꿈은 자본주의가 가장 원하지 않고 거기에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돈 때문에 크게 행복하지도 크게 불행하지도 크게 초조하지도 않은 사람, 그래서 이런 이상한 친구도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데 뭐 어때, 하는 증거가 되는 사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열심히 녹즙 손님들을 모신 다음 지인의 호의로 한켠을 얻어 쓰는 사무실에 출근해 글을 쓴다. 나이 서른에 아직까지 뭐가 될지 궁리나 하고 있는 게 스스로도 한심스럽지만 어디론가는 분명히 가고 있을 테니까.
... 도서관에 가면 놀이공원에 간 것처럼 하루 종일 즐겁게 지낼 수 있으니 돈 안 들이고 즐겁게 지내는 삶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대한 테러다. 누구도 피 흘리게 하지 않는 건전한 테러리스트다. 주변에 아직도 아이고 너 크면 뭐 될래, 하고 걱정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한겨레신문사 관련된 어른들을 뵈면 아예 네, 제가 옛날에 한겨레신문 CF도 나오고 그랬던 걔예요, 크게 못 돼서 죄송합니다, 하고 미리 사과하지만 지금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다.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래서 오늘도 어설픈 테러리스트는 남은 녹즙을 꿀꺽꿀꺽 마시면서 흐느적흐느적 산다. 아버지가 생전에 남기신 경매최고통지서 덕분에 8월 안에 나가라고 몸 좋은 깡패가 찾아왔는데, 뭐 어떻게든 될 일이다. 케세라 세라. 그러고 보니 부모가 남겨주는 재산만 유산인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경제력이 없으셨던 건 그 나름대로 큰 유산이었다. 반지하든, 옥탑이든 무신경하게 버텨낼 수 있는 신경에 오히려 곰팡이 냄새가 없으면 좀 허전한 체질이 되어버렸다 보니 어디서든 뒹굴뒹굴 살 자신이 있다. 장미꽃은 못 되어도 엉겅퀴처럼. 오늘 녹즙이 조금 쓰긴 하지만, 달달한 날도 올 것이다. 안 오면 또한 어떠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