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가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이다. 지은이는 한림대학교 류마티스내과 교수로 근무하는 김현아 선생이다. 의료 현장에서 여러 죽음을 본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 있을 때 죽음을 배우고 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병원의 '죽음 비지니스'에 속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사실 죽음은 개인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나만은 병과 죽음에서 예외인 듯 행동한다. 지은이의 말대로 사람들이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보다도 죽음에 대한 준비는 소홀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화와 죽음을 병원의 일로 만들고, 그 시간에 노동을 하고 재화를 축적하거나 소비 생활로 삶을 즐기도록 선동한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노화와 죽음은 개인을 떠나 병원의 처치 대상이 되었다.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하는 처치와 같은 연명치료는 결코 바람직한 죽음이 될 수 없다. 죽음을 자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만연한 풍조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완화의료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완화의료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연관된 문제들을 겪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치료로 통증, 신체적 문제, 정신적 문제, 사회적 문제, 영적인 문제까지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히 평가함으로써 고통을 예방하고 덜어주는 방식을 의미한다."
완화의료는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고통의 경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하는 고통이다. 연명치료보다는 완화치료에 중점을 두는 게 맞다. 완화의료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 통증을 포함한 괴로운 증상을 해소시킨다.
- 삶을 긍정함과 동시에 죽음이 정상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인지한다.
- 죽음을 서두르지도 방해하지도 않는다.
- 환자 치료에서 심리적이고 영적인 면을 통합한다.
- 환자가 사망 전까지 가능한 한 능동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다.
완화치료는 죽음에 대해 가지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바람직한 죽음이란 다가오는 죽음을 거부하지 않는 마음에서 나온다. 지은이는 바람직한/좋은 형태의 죽음을 큰스님이 열반에 들기 전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는다는 데서 찾는다. 곡기를 끊고 스스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은 삶을 온갖 의료 장비의 도움으로 연장하는 것만큼 고통스럽거나 구차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유명한 염장이는 곱게 떠난 할머니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마흔 살에 사별하고 2남 1녀 여법하게 떠나실 때 일주일간 곡기 끊으시고 가셨어요. 염을 해 드리는데 대소변도 없이 너무 깔끔하셨어요. 본인이 임종, 끝을 맞이하며 스스로 염습도 다 하신 겁니다. 그 할머니같이 가소 싶네요. 제일 좋아하는 옷 입고 누우면 후손이 관 뚜껑은 닫아주겠지요."
험한 꼴 당하기 전 아직 자기 통제가 가능한 의식이 남아 있을 때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거룩해 보인다. 내가 존경하는 스콧 니어링도 그런 식의 죽음을 만들었다. 지은이의 말에 의하면 노쇠해 있을 때의 단식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한다. 본인의 의지와 가족의 협조에 달린 문제다. 나 역시 이런 식의 죽음을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리라.
생로병사에 이유는 없다. 모든 생명체가 걸어가는 자연스런 과정이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은 죽음의 일상성을 인식하고 죽음에 이르는 각 단계에 무엇을 알고 행해야 하는지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병원에 생사여탈권을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영국에서 발간된 <밀레니엄 백서>는 좋은 죽음의 조건을 이렇게 제시한다.
- 죽음이 언제 닥칠지 예상할 수 있다.
- 앞으로 일어날 일을 통제할 수 있다.
- 죽음에 임했을 때도 존엄성과 사생활을 보호받는다.
- 통증을 완화하고 증상을 관리받을 수 있다.
- 죽을 장소에 대한 통제와 선택이 가능하다.
- 전문가로부터 조력을 얻는다.
- 영적, 정서적 욕구를 충족한다.
- 어디에서든 호스피스 간호를 받을 수 있다.
- 임종 시 함께 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 생명유지장치를 쓸 것인지 사전에 결정하고, 그 결정을 존중받는다.
- 작별을 고할 시간을 갖는다.
- 언제 떠날지를 예상하고,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