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한 줄이다. 작가가 인간의 늙음과 병,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병과 죽음을 자연의 순리라 여기는 동양의 사고방식과 다르다. 그것은 배척되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현대 의료가 병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과 비슷하다.
<에브리맨>은 미국 작가인 필립 로스(Philip Roth)가 쓴 장편소설이다. 에브리맨(Everyman)은 '모든 사람', 또는 '보통 사람'이란 뜻이다. 소설 주인공은 이름 대신 '그'라는 호칭으로 쓰인다. '그'는 너와 나,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 소설의 구성은 단순하다. '그'라는 한 인간이 늙고 병들어서 죽는 이야기다. 중간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삽입되지만 그것 또한 병이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그는 잘 나가는 광고회사의 아트 디렉터였다. 은퇴해서는 콘도형 은퇴자 마을에서 소원이던 그림을 그리며 여유 있게 살아간다. 그는 50대 이후부터 심혈관 계통 질병에 시달린다. 혈관 수술을 반복하고 몸 안에 제세동기도 삽입한다. 노화에 따른 질병과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이 그를 괴롭힌다.
인생에 대한 허무와 외로움 역시 그를 힘들게 한다. 늙고 병들면서 가까웠던 사람들과도 멀어진다. 그는 세 번이나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다. 도덕적인 면에서 볼 때 그는 방탕하게 살았다. 비서와 눈이 맞아 두 아들을 둔 첫째 부인과 헤어졌고, 20대 모델과 바람이 나서 둘째 부인한테서는 이혼을 당했다. 셋째마저 얼마 못 가고 헤어져 혼자가 되었다. 그가 병든 노년이 되어 되었을 때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가까웠던 형이나 잘 나가던 중장년 시절 친구들도 옆에 없다. 애착을 갖던 그림 그리기도 아무 위안이 되어 주지 못한다. 쇠약해진 몸과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그는 무력하다. 그의 이야기는 발버둥쳐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책 제목대로 보통 사람들이 밟아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결국 그는 수술을 받으러 들어갔다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소설의 첫 부분에 그의 장례식 장면이 나온다. 간단한 의식과 짧은 애도 뒤 모든 게 끝났다. 몇은 비통해했지만 어떤 사람은 안도하고 일부는 기뻐하기도 했다. 그날 같은 주에서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런 장례식이 오백 건이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지구상에 태어난 생명체는 예외가 없다. 그것은 자연의 순리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죽음을 거역하면서 발버둥치는 것은 어리석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가 아닐까.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고 말초적인 쾌락에 몰두한다면 허방에 빠지듯 두려움으로 끝맺음할 가능성이 크다.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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