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샌. 2022. 1. 4. 12:16

20세기 물리학과 수학을 대표하는 두 거장을 중심으로 과학과 철학의 여러 쟁점을 소개하는 책이다. 아인슈타인과 괴델은 프린스턴 고등과학연구소에서 같이 출퇴근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서로 상이한 성격의 두 천재가 함께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추론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과학 작가인 짐 홀트(Jim Holt)가 썼다.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에는 과학과 수학, 철학의 다양한 분야가 논의되고 있다. 시공간과 우주, 상대성과 양자론, 수학계의 여러 쟁점들, 인류의 미래와 인간의 삶 등 다양하다. 다만 지은이가 20년 간 쓴 글 모음이라 내용의 일관성이 부족하지만,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기에는 넉넉하다.

 

책에는 여러 수학자와 수학적 논쟁이 나오는데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물리에서 사용하는 도구적 수학은 사실 수학이라고 부를 수 없다. 수학은 순수한 인간의 사고 작용으로 철학에 가깝다.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수학에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본연의 불변하는 수학적 실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수학의 아름다움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남루한 실증적 세계 위에 떠 있는 이데아로서의 수학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알면 알아서, 모르면 몰라서 수학의 신비성에 경도되는지 모르겠다. 

 

수학이 단순한 기호에 불과한지, 아니면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오래된 철학적 논쟁이다. 괴델 하면 연상되는 불완전성 정리 역시 그런 관점에서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언뜻 보기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닮아 있는데 서로 내용적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에서 물리나 우주 쪽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수학은 그렇지 못했다. 이미 노화한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책 뒷부분에 실린 '짧지만 의미 있는 생각들'이라는 소품 글들도 흥미로웠다. 확률로 따져 보는 인류의 종말, 죽음에 대한 인식, 인간의 과도한 확신, 돌의 마음 등을 과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비판도 있다. 100만 년 후의 인류에게 남을 것은 숫자와 웃음이라는 결론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모든 글에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유머가 있다.

 

아인슈타인과 괴델 모두 노후에는 우울과 공허감으로 힘들어했다. 과학계에서 이룬 업적이나 유명세도 위안이 되지 못했다. 시간의 비실재성에 대해 둘은 굳게 믿었지만 막상 죽음 앞에서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물리학을 믿는 우리로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구분이 환영일 뿐이지만, 고집스럽게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라고 쓰고, 곧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나도 가야 할 시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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