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곧, 인자는 마땅히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와 대제관과 율사들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뒤 다시 일으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씀을 분명히 하시자 베드로가 그분을 잡아당기며 책망하기 시작했다. 예수께서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는 베드로를 꾸짖으셨다.
"물러가라, 사탄아!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 마르코 8,31-33
이 장면에서는 갑자기 "쾅!" 하고 울리는 운명의 북소리가 들린다. 예수는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고, 베드로로 대표되는 제자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책망한다. 하느님의 길과 인간의 길이 극명하게 나누어진다.
이즈음에 예수는 예루살렘에 쳐들어가서 낡고 굳어진 유대교의 성(城)을 허물기로 결심했을 터였다. 갈릴래아에서 병든 민중을 고치고 위안과 사랑을 전하는 행위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기득권 중심에 저항하는 것은 고난과 죽임 당함을 의미했다. 예수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안 되는 줄 아는 길이지만 가야 한다고 고독하게 결심한 것이다. 곁에 따라다니던 제자들을 이해시키기도 힘든 길이었다. 예수와 제자들은 지향하는 바가 끝까지 달랐다. 베드로를 향한 "물러가라, 사탄아!"라는 호통에서 예수 내면의 선과 악의 선명한 대립 구도가 보인다.
여기에는 사흘 뒤에 살아난다는 부활 예고도 들어 있다. 이 대목은 나에게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 부활이지만, 부활을 꼭 육체가 되살아나는 것으로 봐야 할까. 부활과 재림은 서로 연계되어 있다. 부활은 재림의 징표며 약속이었다. 제자들과 사도 바울,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부활과 함께 곧 닥칠 재림도 철석 같이 믿었다. 재림이 무산되면 부활도 근거를 잃는 게 아닐까. 부활은 육체가 되살아난다기보다 제자들의 마음 속에 영으로 살아나서 함께 있겠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부활을 믿는 것은 내 속에 살아계신 예수를 믿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편법일지 몰라도 부활에 대한 내 생각은 그렇다. 나 같은 사이비 신자에게는 그래야 성경이 부드럽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