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39]

샌. 2022. 2. 19. 12:05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여기 있는 사람 가운데 더러는 죽기 전에 하느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 마르코 9:1

 

 

다음에 나올 마르코복음 13장에 종말에 관한 예수의 말씀이 자세히 들어 있다. 여기서는 종말의 때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여기 있는 사람 가운데 죽기 전에' 세상의 종말을 볼 수 있다는 것은 50 년 안에는 세상의 끝이 도래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 예언은 틀렸다. 그때로부터 2천 년이 지나고 있건만 아직도 세상은 건재하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고대하는 한편 하느님의 심판으로 세상의 악을 쓸어버리는 종말의 때를 기다리기도 했으리라. 종말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보면 예수도 종말을 믿었던 듯하다. 그것도 확고하게 곧 닥칠 사실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갈릴래아로 돌아가 선포한 첫마디가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예수의 생애와 말씀을 보면 예수는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분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사랑의 하느님에 대한 복음을 전하며 함께 힘을 모아 지금 여기에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예수 역시 종말을 받아들였겠지만 과격한 종말이기보다 부드러운 종말의 성격이 크다. 내가 볼 때는 그렇다.

 

나는 여기 나오는 급박한 종말의 때라든가 13장의 종말에 대한 묘사는 예수의 말씀이기보다 복음서의 기자가 뒤에 삽입하지 않았나 싶다. 초대교회에서는 확실히 종말 신앙이 퍼져 있었다. 종말을 믿는다는 것은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가는 위안이 되면서 신자들을 결속시키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곧 닥칠 하느님의 심판에 대비하면서 전 재산을 바치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많았다. 그런 당시의 분위기가 복음서에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종말은 희망이기도 하지만 역사에 대한 비관론이기도 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 되니까 하느님의 최후 심판에 의지하는 심리도 있지 않겠는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예수 역시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처럼 다급하지는 않았다. 예수의 역사 전망이 바로 몇 발자국 앞에 낭떠러지가 있다고 믿었을 근거는 없다.

 

이 구절은 마르코복음이 쓰일 당시의 환난에 처한 신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방편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나는 생각한다. 예수의 말씀을 빌린 마르코의 애타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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