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는 제자들과 군중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벌어들인들 목숨을 해치게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무엇을 목숨 값으로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간음하고 죄 짓는 이 세대 가운데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게 될 때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 마르코 8,34-38
스승 예수를 따른다는 의미의 핵심이 여기에 나온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여러 말씀 중에서 제일 소중한 부분을 고르라면 이 말씀을 선택하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기!'와 '제 십자가를 지기!', 이 둘이 예수를 따르려는 이들이 지켜야 할 요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중언부언 덧붙이고 싶지 않다. 이 말씀은 평생을 두고 묵상하며 걸어가야 할, 우리에게 주어진 화두가 아닐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을까, 아니면 1학년쯤 되었을까. 어느 따스한 봄날 서울에서 찾아온 전도 팀을 따라 동네 아이들은 뒷산 양지바른 공터에 모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니라." 손풍금 반주에 따라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이 노래를 배웠고 따라 불렀다. 기독교가 나에게 준 첫 장면이고 첫 성경 구절이었다. 그 뒤로 수십 년 동안은 교회의 가르침이 이 한 마디에 집약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예수의 십자가 대속 교리를 나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지금 읽고 있는 <마르코복음>에 서술된 예수는 그런 분이 아니다. 세상의 불의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운동에 자신을 바친 분이다. 예수 운동은 이 세상의 방식이 아니어서 제자들이나 군중이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가 돌아가시고 나서 기독교는 교리를 만들고 세를 확장하게 되었지만 생전의 예수가 꿈꾸었던 세상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기독교는 2천 년 전 갈릴래아의 예수와는 별 관계없는 종교로서 번성해 나갈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