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사람 사는 곳인데

샌. 2022. 6. 4. 10:59

위층은 내 전화번호부에 '올빼미'로 명명되어 있다. 밤늦게서야 바빠지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가장이 늦게 퇴근하는 것인지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분주하다. 문제는 이 시간대가 내 잠자는 시간과 겹친다는 데 있다. 주로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에 깨어나면 조용해질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층간 소음 스트레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 아파트에 입주한 1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불편함을 전달하고 직접 만나서 호소도 했다. 그러나 생활 패턴이 쉽게 바뀔 수 없는 일이었다. 완벽한 해결책은 이사를 가야 했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에 상태가 심해졌다. 어젯밤에는 참고 참다가 밤 12시가 넘어 문자를 넣었다. 작년인가 직접 만났을 때 전화번호를 알으켜주면서 소음이 심하면 말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층입니다. 밤에는 문 좀 살살 닫아주세요. 부탁합니다~"

 

곧 답장이 왔다.

 

"너무 예민하신 것 같습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애들도 없고 저 혼자 누워서 핸드폰 보고 있는데 저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 문소리를 지적하니 당황스럽습니다."

 

위층에서 날 어떻게 보고 있을지는 뻔하다. 아래층에 사는 까다로운 노인네 때문에 힘들다고 여길 것이다. 내 시선은 '사람 사는 곳'이란 말에 오래 머문다. 나 역시 '사람 사는 곳'이란 의미를 품고 문자를 보냈던 터였다. 한쪽은 마음껏 생활할 자유를, 다른 쪽은 방해받지 않고 살 권리를 주장한다. 여기도 사람이 산다고 부르짖고 싶지만 벽을 쌓고 지르는 소리는 악다구니가 될 게 뻔하다. 인간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는 이 두 지점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과제인 것 같다.

 

층간 소음으로 생기는 마찰의 첫째 원인은 소통의 부재다. 윗층에서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지만, 아래층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위층에서는 뭐 그런 사소한 것 가지고 난리냐고 하고, 아래층에서는 어쩜 그렇게 이웃을 배려할 줄 모르냐고 화를 낸다. 역지사지하면 풀릴 일이 서로의 오해와 원망이 겹쳐 일이 커진다.

 

위층에서는 자신 때문에 아래층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이웃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소음을 유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밤늦은 시간에 문 쾅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위층한테 알아듣게 전할 방법이 별로 없다. 고작 이번처럼 문자를 보내지만 상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무 관계도 없는 타인이기 때문이다. 만약 가족이거나 부모라면 상대방의 예민한 성격 탓을 하기보다 조심해야겠다고 먼저 마음먹을 것이다.

 

한밤중에 위층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같은 상황에 대해 서로 인식의 차이가 크다는 것만 확인했다. 위층의 '사람 사는 곳인데'는 아래층의 스트레스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가족간에도 소통이 안 되는 부분이 많은데 하물며 남남 사이야 오죽하겠냐 싶다. 괴팍한 늙은이라 부르든 말든 알려줄 건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웃의 심정을 헤아리고 작게라도 신경을 써주는 것은 그들의 몫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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