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이모 집에 자주 놀러 갔다. 방학 때면 며칠씩 묵곤 했다. 이모 동네에는 사촌 형제만 아니라 학교 친구들도 있어서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며 놀았다. 동네 뒤에는 큰 산이 있어서 들어가면 정글 탐험하는 것처럼 모험심을 자극했다. 한 번은 뒷산에서 놀다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이모 집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렸는데, 오가는 길 역시 놀이터였다. 길 중간쯤에 넓은 사과 과수원이 있었는데 조롱조롱 매달린 사과나무의 풍경이 지금도 선명하다. 60년대였던 그 시절에는 사과는 대구 지역에서 많이 났고, 우리 지역에는 귀할 때였다. 지금은 사과가 고향의 주작물이 되었다.
이모네 동네는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서 경사가 진 데다가 바위가 많았다. 이모 집 마당에도 큰 바위가 있었다. 평지에 있는 우리 동네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런 점이 굉장히 재미있었고 또한 놀거리가 많았다. 이모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러 산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물이 귀한 동네라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에 낯을 씻었다. 집에서 쓰는 식수도 그 물을 받아 왔다. 우리 동네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게 맞나 싶었다.
사촌 형제들도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방에서 놀다가 마을 앞을 지나가는 기차 소리가 들리면 걔들은 방에서 뛰쳐나와 신기한 듯 기차를 구경했다. 나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신기했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특별한 것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이모 집 밑에 내 또래의 D가 살고 있었다. 무슨 연유였는지 부모님은 뵐 수 없었고, 놀러가면 항상 D 혼자 있었다. D가 직접 부엌에 들어가 먹을 것도 챙겨 왔다. 어쨌든 D의 집에서는 어른들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놀 수 있어서 좋았다. 특이한 건 D네 집에는 라디오가 있었다. 당시는 라디오가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잡음으로 지직거리는 그 라디오 둘레에 엎드려 메르데카배 축구 중계를 손에 땀을 쥐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모 동네 입구에 있는 이 느티나무 역시 그 시절 놀이터 중의 한 곳이다. 그때는 무척 거대하게 보였는데 이제 보니 그렇게 큰 나무는 아니었다. 수령이 160년이라고 적혀 있으니, 60년 전인 그때는 100살쯤 되었는가 보다. 동네에 들어가도 이젠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이 나무만이 유일하게 그 시절을 되새기게 해 준다.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煙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비교가 과했는지 모르지만 야은 선생의 심정을 일단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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