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인섬니악 시티

샌. 2022. 10. 27. 09:27

책 내용이나 지은이인 빌 헤이스(Bill Hayes)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읽었다. 그러다가 엉뚱한 데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눈치를 못 채고 그나마 책의 뒷부분에 가서였다. '십육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아기처럼 자는 남자하고 살았다.' 책의 초반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러니 지은이를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 남자를 남편이 아닌 '파트너'라고 지칭하는 게 약간 이상하긴 했으나 서양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책의 부제가 '뉴욕, 올리버 색스 그리고 나'다. 파트너였던 스티브가 죽고 뉴욕으로 주거를 옮긴 지은이는 올리버 색스를 만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인섬니악 시티(Insomniac City)>는 - '불면의 도시'라는 뜻으로 뉴욕을 가리킨다 - 흥미로운 뉴욕 생활과 올리버 색스와의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올리버 색스 역시 남자이니 지은이는 응당 여자라고 믿은 건 내 고정관념이었다. 뒤에 거리의 사람들이 지은이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대목에서 아차 싶었다. 지은이는 게이였다. 뒤에 올리버 색스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혔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쓴 그 올리버 색스다. 이 책 덕분에 올리버 색스가 무척 다재다능하고 따스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빌 헤이스는 도시에 어울리는 작가인 것 같다. 올리버 색스와 함께 뉴욕을 사랑하는 마음이 구구절절이 나타난다. 글이 유려하면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배어 있다. 직접 찍은 뉴요커들의 인물사진도 좋다. 사진을 보면 지은이가 얼마나 감성적이고 친화력이 좋은 사람인지가 보인다.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무장해제시키는 작가의 재능이 부럽다.

 

지은이는 올리버 색스의 말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전한다. 나에게는 관심이 가는 죽음의 과정이었다. 올리버 색스는 암이 전신에 퍼진 상태에서도 온전한 의식을 유지하며 글쓰기를 계속했다.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점이 품위 있는 죽음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더구나 옆에는 사랑하는 빌이 있었다. 인생의 종착지에 다가가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마음의 여유도 놀라웠다.

 

올리버 색스가 죽기 하루 전에 쓴 빌 헤이스의 일기는 이렇다.

 

2015. 8. 29

나는 그의 곁을 지킨다. 케이트와 모린과 내가 새벽 3시 30분부터 그의 침실을 지키고 있다. 모린이 다른 방에 있던 나를 깨운 것이 이 시각이었다.

"빌리, 빨리 와요. 박사님의 호흡이 달라졌어요."

 

가슴이 무너질 듯 아프지만 평온하다.

지난밤 잠깐 눈 붙이기 전에,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나 해서 와 보았다. 나는 담요로 그의 목을 감싸주고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요?" 내가 말했다.

"모르지." 그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는 듯 웃음을 띠고 있었다.

"많이요."

"좋아." 올리버가 말했다. "아주 좋아."

"좋은 꿈 꿔요."

 

지은이는 올리버가 죽은 후 세상 사람들이 올리버 없이도 잘 살아가는 게 슬펐다고 말하며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런데 살아간다. 그들도, 우리도. 매일 아침 눈 뜨면 물음이 일어나곤 한다. 뭐하자는 거지? 살아서 뭐하게? 답은 정말로 하나뿐이다. 살아 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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