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된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고, 인연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가까워지지 못한다. 이만큼이나마 세상을 살아보니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더라. 세상일은 노력한다고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헛심만 쓴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러므로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순리에 따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되어가는대로 살기'다. 되어가는대로 살기는 되는대로 살기와는 다르다. 되는대로 사는 것은 제멋대로 사는 것이다. 되어가는대로 사는 것은 자기 통제와 규율이 있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삶에는 목표가 필요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실행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열매를 맺느냐 아니냐는 별개의 일이다. 되어가는대로 사는 것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마음가짐이다.
나는 체념(締念)이란 말을 좋아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체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이고, 다른 하나는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다. 체념은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나는 뒤의 의미에 방점을 두는데 '어쩔 수 없음을 순리로 받아들이는 마음' 정도로 해석한다. 그게 세상 돌아가는 도리를 깨달은 마음이 아닐까. 어떤 결과이든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노자의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무위는 함이다. 단지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에고 없이 함이 무위다. 애초에 일을 시작할 때부터 사욕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위란 '마음을 비운 함'이다. 무위 역시 되어가는대로 사는 마음과 연관이 있다.
왜 되어가는대로 사는 마음을 가져야 하느냐면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다. 부처는 인간의 고통을 집착에서 찾았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게 되어 괴롭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집착에서 떠나면 더 이상 괴롭지 않다. 그렇다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죄는 아니다. 사랑하되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않고, 미워하되 오는 사람을 마다하지 않는 경지까지 간다면 인생의 괴로움은 한결 덜어질 것이다. 되어가는대로 산다는 것은 환경이나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 인간으로 산다는 의미다.
니체가 말하는 위버맨쉬/초인(超人) 역시 어떤 것에 종속되거나 충동대로 사는 것을 넘어선 사람이다. 위버맨쉬는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장자가 말하는 진인(眞人)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특징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자연의 원리를 거역하지 않는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다. 흥망성쇠는 인간이 경험해야 하는 변화와 수련의 과정이며 취사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위버맨쉬나 진인은 모든 것을 긍정하는 자족의 경지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래야 되어가는대로 살 수가 있다.
인간의 욕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좋고 나쁜 것이란 없다. 인간의 분별심이 호오의 감정을 유발할 뿐이다. 인간의 욕망은 긍정되어야 하지만 욕망에 휘둘리는 것은 문제다.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되어가는대로 살자는 것은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루어지면 좋고, 안 이루어진들 괜찮다. 되어가는대로 살기는 나의 에고가 최소한으로 작동하는 삶이다. 공자가 칭찬한 안회처럼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에도 자족할 줄 안다. 자신을 하늘의 뜻에 맡겨 놓고 살 줄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무엇이 아닌 존재 자체에서 무상의 즐거움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