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

샌. 2023. 3. 8. 11:36

지은이인 정규웅 작가는 1970년대에 중앙일보 문학 담당 기자로 있으면서 많은 문인들을 취재하고 교유를 가졌다. 이 책은 그 시절 문인들에 얽힌 일화를 전해주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시인이나 소설가들의 삶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1970년대는 정치적으로 혹독한 계절이었다. 그 시대는 1970년의 '정인숙 피살 사건'과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으로 시작되어 1979년 박정희 피살로 끝을 맺었다. 문학계도 민중문학, 민족문학을 지향하는 반체제문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시대 현실을 외면하고 정권에 아부하거나 순수문학을 고집하는 부류도 있었다.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내 기억에도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차지하려고 김동리와 조연현 간에 벌어진 볼썽사나운 싸움도 그중 하나다. 당시에는 젊잖은 문인들이 왜 그렇게 감투를 쓰려고 난리를 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인이라면 이슬을 먹고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인식 수준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책에서 내 기억과 관련되는 부분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당시에 펜클럽 주최의 세계작가대회가 열려서 관심이 갔던 기억이 난다. 펜클럽에 가입하고 이후에도 주된 활동을 한 사람이 모윤숙 시인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펜클럽에 가입하게 된 사연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모윤숙은 1954년에 유엔 총회에 참석하고 귀국 길에 런던에 들렀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PEN'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갔더니 국제 펜클럽 본부 사무실이었다. 거기서 설명을 듣고 귀국해서 60여 명의 문인을 모아 '한국 펜 센터'를 창설했다고 한다. 모윤숙은 1971년에 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까지 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지만 표면적인 화려함과는 달리 내면은 늘 어둠이 깃들어 있었고 고독했다고 한다.

 

그 시절 나는 <문학사상>의 애독자였다. <문학사상>은 1972년에 이어령이 창간한 문학 월간지였다. 순수문예지라기보다 대중성을 띤 다양한 기획물이 있어 읽기에 부담이 없고 재미있었다. 이상이 초상화가 들어간 창간호 표지는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우리나라 가장 인기 있는 문학상인 '이상 문학상'도 문학사상사에서 제정했다. 1회 수상자는 김승옥이었다.

 

좌우로 갈라진 문학계를 인간미로 녹여낸 이문구를 보러 미국에서 박용래와 박상룡, 유고시집으로 살아돌아온 천상병, 구라의 끝판왕 황석영, 문단의 괴짜 김관식과 기인 이외수, 수상을 거부한 자유인 이제하, 김광섭과 이헌구의 우정, 커피와 고독의 김현승, 소설가 김광주와 김훈 부자, 병상에 누워 입으로 소설을 쓴 유주현,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했던 유치환과 이영도, 최정희와 김동환 부부와 두 딸 이야기, 조숙한 천재 이한직, 신세대 모더니스트 김광균, 삶과 죽음을 함께 나눈 방기환과 임옥인, 속세에 휘둘린 김춘수, 섬세한 심성으로 구설수에 오른 박목월, 어두운 시대의 비극 김남주 등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에는 다수의 문인들이 등장한다. 딱딱한 문학사보다 인간의 체취가 느껴지는 이런 삶의 이야기들이 훨씬 가깝게 다가온다. 아쉬운 점은 신문에 연재된 것이라 분량에 제한이 있어 마음껏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은 매주 한 번씩 중앙일보에 연재된 '정규웅의 문단 뒤안길'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1970년대의 시대상과 그 시대의 요구에 다양하게 반응하며 살아간 문인들의 풍경이 잘 그려져 있다. 인간의 삶이란 어느 동네에서나 대동소이한 것 같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처럼 보여도 이면은 쓸쓸하고 안쓰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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