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아이고

샌. 2023. 6. 5. 10:34

"아이고!" 망팔(望八)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이젠 아내나 나나 집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되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때부터 저절로 튀어나온다. 앉을 때도 일어설 때도 무심코 내뱉는 말이다. "아이고!"

 

불과 몇 년 전이었다. 트레킹 도중에 쉴 자리를 찾아 앉으며 선배의 입에서 "아이고"라고 신음 섞인 비명이 나왔을 때 우리 모두는 웃었다. 벌써 그럴 연세가 되었느냐고 놀리기까지 했다. 이젠 나도 그때의 선배 나이를 지났고, 그리고 똑 같이 되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가 보다.

 

개화기 때 조선에서 활동했던 선교사의 글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조선인이 여러 명 있었는데, 이들이 수시로 '간다'라고 말해서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조선인들이 습관적으로 말하는 "아이고"가 영어로는 "I go"로 들렸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지 아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겠지만 서양인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빨리빨리'처럼 특이한 말버릇으로 들렸을 법하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잠을 충분히 잤지만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다. 노동이 아닌 노는 일에도 쉽게 지친다. 집중력을 유지하는 시간도 짧아진다. 5년 전만 해도 2박3일 내내 바둑을 둬도 거뜬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 판을 몰두해서 두기 힘들다. 등산을 비롯해 걷는 양도 많이 줄어들었다. 일흔 전에 비하면 활동량이 반도 안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제 등산을 즐기는 친구는 거의 없다. 대개가 가벼운 트레킹 정도다. 그마저도 한두 시간 걸으면 그만 마치자고 한다. 이러니 걸핏하면 입에서 "아이고"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생각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과거에 싱싱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서글퍼진다. 어쩌겠는가, 태어나서 늙고 쇠약해지는 것은 자연의 순리인 것을.

 

오늘도 여러 차례 아내의 "아이고" 소리를 듣는다. 처음에는 귀에 거슬렸으나 많이 적응이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인데 누구를 나무랄까. 내가 하든 아내가 하든 "아이고"에서 이제는 연민을 느낀다. 우리 모두는 동병상련의 가련한 존재가 아닌가. 그러다가 생의 끝이 되면 타인의 "아이고"라는 전송을 들으며 우리는 떠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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