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어머, 몰랐어 / 박봉준

샌. 2023. 7. 7. 09:50

동네 미장원에서

할머니들이 수군거리는데

선거에 나온 아무개가 빨갱이라여

빨갱이를 뽑으면 큰일 나지

암, 나라가 망하지

머리를 말다 듣기 민망스러운

미장원 원장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는

윤사월 해처럼 길어지고

그래서 그런지

그 빨갱이가 보기 좋게 떨어졌는데

나중에 미장원 원장이

친구 사이인 그 빨갱이 부인을 만나

할머니들 얘기를 했더니

어머, 내 남편이 빨갱이가 된 걸

우리는 여태 몰랐어

선거 후에도 기력이 남았는지

한바탕 휘도록 웃었다는

빨갱이 부인

 

- 어머, 몰랐어 / 박봉준

 

 

미국에 살고 있는 대학 동기가 한국에 다니러 왔다가 어제 양재동 모임에 나왔다. 이젠 고국에 돌아와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사회주의 국가가 될 텐데 겁이 나서 못 들어와." 젊잖게 표현해서 사회주의지 속마음은 빨갱이 나라가 된다고 예단하고 있음이 표정에 드러났다. 연금이나 재산 얘기를 나누던 때여서 가진 돈을 뺏기지나 않을까, 라는 두려움이 제일 컸는지 모른다.

 

친구는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뒤 미국에 건너가 박사가 되고 교수로 정년퇴직을 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사회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전공 공부에만 몰두하던 친구였다. 50년이 지났어도 그 시절 지배층의 사고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뭐, 이런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윤 정권에서 기용하는 사람들만 봐도 극우 계열에 속한 이들이 상당하다. 그들은 말한다. 이제야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정말 그럴까. 미장원 할머니들의 빨갱이 타령은 차라리 순진해서 귀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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