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앙코르 인문 기행

샌. 2024. 1. 23. 14:42

씨엠립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읽은 책이다. 인천공항에서 씨엠립까지 다섯 시간 정도 걸리니 책 한 권 읽기에 딱 알맞은 시간이다. 일부러 집에서 읽지 않고 배낭에 넣어 비행기 안으로 가져간 책이다.

 

<앙코르 인문 기행>은 대만의 쟝쉰(蔣勳) 선생이 썼다. 선생이 앙코르 유적지에서 친구에게 쓴 편지들을 엮었다. 선생은 앙코르를 14번이나 다녀올 정도로 앙코르 사랑에 빠진 분이다. 그는 폐허가 된 앙코르 유적을 보면서 문명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인간이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묻는다. 폐허 구석에 앉아 가만히 눈물을 흘리는 선생의 모습이 보인다.

 

앙코르 유적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찾은 책은 대부분 여행 안내서였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단순한 여행의 감상이 아닌 인간 내면의 깊숙한 부분을 건드리는 인문서다. 인간의 가장  찬란하게 빛났다가 사라진 앙코르 왕조가 남긴 폐허를 바라보며 문명과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사유를 적었다. 떠들썩한 관광이 아닌 새벽에 홀로 유적을 찾아 탑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침묵의 고요함에 대해 말한다. <앙코르 인문 기행>은 그 따스한 아침 햇살 같은 책이다.

 

고맙게도 책 끝에는 13세기에 중국의 주달관(周達觀)이 쓴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가 실려 있다. 주달관은 원나라 사신으로 앙코르 왕국에 와서 1년간 머물면서 앙코르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 <진랍풍토기>가 앙코르에 대한 유일한 기록물이다. 19세기에 와서 <진랍풍토기>가 유럽에 소개되면서 밀림 속에 묻힌 앙코르 유적지를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진랍풍토기>에 실린 앙코르인들의 생활상과 풍습도 무척 흥미롭다. 중국인인 주달관의 눈으로는 야만인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웅장한 궁궐과 사원에 대해서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때 금색으로 화려하게 빛나던 탑은 800년이 지난 지금은 검게 변해 무너져 있다.

 

폐허가 주는 아름다움과 처연함을 앙코르 유적만큼 드러내 보여주는 곳이 있을까. 이 책의 추천사를 쓴 분의 말이다.

 

"앙코르로 가! 어쩌면 <앙코르 인문 기행>을 읽고 갈 수도 있겠지. 그럼 알게 될 거야. 아름다움은 참된 마음으로 이루어졌으니 환화(幻化) 속에서도 결국은 해탈에 이른다는 것을, 고난 앞에서도 네 마음은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따뜻한 마음은 결국은 비어 있음[空]에 가까워지고, 그때는 그 무엇도 너에게 고통을 주거나 상처를 입히거나 파멸시킬 수 없어. 그때 햇빛은 바이욘의 미소 띤 얼굴을 밝히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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