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는 의지를 세워 열심히 노력하면 웬만한 일은 전부 이뤄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 보니 알겠다.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의해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원래부터 많지 않았고, 흐르는 시간을 당해 내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점이 하나 있다.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작은 기쁨으로 인해 회복된다는 사실이다. 하루를 열심히 보내는 가운데 발견하는 사소한 기쁨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이 세월로 인한 무상감과 비애감을 달래준다. 그 사실을 깨닫자 비로소 삶이 가벼워졌다. 미래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어떤 일에도 쉽게 좌절하지 않으며, 이유 없이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고, 함부로 서운해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제야 내 인생이 온전히 내 손아귀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은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살아야 한다. 사소한 기쁨과 웃음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은 마음만 먹으면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 책 뒷표지에 실린 글이 지은이인 이근후 선생의 생각을 함축하고 있다. 선생은 1935년생이니 아흔에 다가선 연세가 되었다.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네팔에서의 의료 봉사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면서 왕성한 인생 후반전을 보내신다. 후학들의 귀감이 되시는 분이다. 특히 선생은 자녀들과 3대가 함께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라는 전작에서 그 이야기를 소개했다.
청년이든 장년이든 노년이든 인생의 각 단계에는 나름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기 마련이다. 인생은 어떤 관점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유쾌하게 살 수도 있고 괴롭게 살 수도 있다. 죽을병에 걸렸다고 전부 비참해지는 건 아니다. 주어지는 운명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각자의 몫이다. 선생은 이런 삶의 능동성에 초점을 맞춘다.
며칠 전 지인과 대화를 하면서 불교의 한 우화를 나누었다. 코끼리를 피해서 등나무 줄기를 잡고 우물 안으로 숨은 사람이 있었다. 살았다는 안도도 잠시, 우물 밑에서는 독사 날름거리고 위에서는 쥐가 등나무 줄기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었다. 절망적인 순간에 등나무 덤불 속에 있는 벌집에서 꿀이 흘려내려 얼굴에 떨어졌다. 이 사람은 다음에 일어날 일은 잊은 채 꿀맛에 도취되어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는 우화였다.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꿀은 일상의 작은 기쁨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어차피 인간이 가진 절체절명의 실존적 상황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꿀맛이라도 음미하고 누릴 줄 아는 게 옳은 삶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위아래를 바라보며 비통해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극단적인 비유지만 현실 생활 철학은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강조한다. 우리가 가꾸는 인생은 절망 가운데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선생은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분인 듯하다. 나 같은 성격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유형이다. 누구나 자기 몫의 삶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일과 활동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와 홀로 있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한다. 개인에 따라 둘이 조합되는 퍼센트는 다를 것이다. 이를 자기의 천성과 조화시키며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행복한 삶의 요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올 한 해는 일년 내내 내 생일이다." 팔순 잔치를 어떻게 치르고 싶느냐는 가족의 물음에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소란한 팔순 잔치 대신 1년 내내 소중한 사람들과 각각 약속을 잡아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다는 선생의 바람이었다. 물론 상대에게는 팔순이라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식사를 대접했다. 내가 만약 팔순까지 살 수 있다면 나도 선생의 방법을 써 보고 싶다.
집착하면 인생이 힘들어진다.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은 가볍게 일상의 즐거움을 찾고 누리면서 살아가라고 충고한다. 그런 사소한 기쁨이 쌓여 만족스러운 인생이 된다. 선생의 유쾌한 삶의 비결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선생의 말마따나 인생, 너무 진지하게 살 필요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