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새로운 가난이 온다

샌. 2024. 2. 14. 11:20

철학자인 김만권 선생이 쓴 책이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선생은 제2 기계 시대로 부른다. 이전 시대의 증기나 전기 에너지에 의한 산업혁명을 하나로 묶어 제1 기계 시대라 하고, 디지털과 AI에 의한 혁명을 제2 기계 시대라 명칭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만큼 제1 기계시대와 구분되는 근본적이면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불안을 야기한다. 제2 기계 시대를 맞는 우리의 불안은 대체로 셋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인간과 기계를 구분할 수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

둘째, 기계가 마침내 우리를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셋째, 기계가 우리의 일자리를 가져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선생은 다가오는 시대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헤쳐나가자고 한다. 첫째, 기계가 시간과 함께 하는 우연성을 체득하지 못하는 이상 인간의 고유성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둘째, 인간이 서로 배려하고 보호한다면 기계의 지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셋째, 풍요의 시대에 오직 노동만을 생존의 자격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19세기부터의 세계 경제 흐름을 역사적, 철학적으로 개관한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들어 인류를 지배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비중을 많이 둔다. 이 시기에 시장의 힘이 국가보다 앞서면서 시장주의와 능력주의가 팽배해졌고 복지는 쇠퇴했다. 사회는 더 양극화되었고 극소수의 승자와 엘리트를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소득 불평등이 자산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자본 소득의 세습으로 승자와 패자와의 구도는 고착화되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 탓인지 민주주의에도 이상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포퓨리즘과 극우파가 득세하고 강대국 지도자들도 자국의 이익 챙기기에만 열중한다. 조용하던 세계가 다시 분쟁과 대립의 싸움터로 변하고 있다. 미국에서 다시 등장한 트럼프의 인기를 비롯해 민주주의의 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디지털 문명은 어쩌면 계층간의 격차를 더 심화시킬지 모른다.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는 말이 있듯 새로운 정보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경제 사회적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2 기계 시대에는 노동의 개념도 변한다. '플랫폼 노동'이 노동자들을 빈곤과 예속으로 떨어뜨린다. 인간을 위해야 할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양극화를 부추기고, 민주주의를 변질시키며, 사회적 보호 장치마저 해체하고 있다.

 

손 놓고 가만히 있는다면 미래는 암담해 보인다. 부와 권력을 지니지 못한 대다수 보통 사람들에게 미래는 디스토피아일까? 지은이는 비관적인 현실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 미래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먼저 노동의 가치, 능력주의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사고의 틀을 깨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소비사회에서 노동 윤리가 필요한 이유는 가난한 이들을 사회에서 배제시키기 위해서다'라는 지은이의 말이 신선했다. 한마디로 구시대의 노동 윤리는 폐기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가난이 온다>는 제2 기계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다섯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제2 기계 시대에 맞는 분배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노동 밖으로 나서자.

둘째, 제2 기계 시대에 상응하는 새로운 권리로서 디지털 시민권을 만들자.

셋째, 분배의 재원으로 로봇세와 구글세를 걷자.

넷째, 그 재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분배 형태(기본소득, 기초자본 등)를 통해 시민들에게 현금을 나눠주자.

다섯째, 노동자들을 위한 보호망으로서 '전국민 고용 보험'을 도입하자.

 

이런 제안이 현실 정치를 통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실천될지는 미지수다. 기득권자들이 순순히 자신들의 지분을 양보할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시민들의 연대를 강조한다. 과연 인간의 욕망과 이익 추구를 얼마나 자제시킬 수 있을까? 나에게는 다다를 수 없는 애절한 호소로 들려서 안타깝다. 책 끝에 나오는 지은이의 마지막 말이다.

 

"평범한 우리들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길은, 첫 번째도 연대, 두 번째도 연대, 세 번째도 연대가 아닐까요? 그런 연대가 가능하게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만들고, 그 제도가 다시 연대를 강화해 나가는 선순환. 비록 지금은 우리가 서로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할지라도, 우리가 내딛을 수 있는 첫걸음은 바로 서로의 손을 맞잡는 '연대'일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들, 이웃들, 아이들을 떠올려 보세요. 사랑하는 이들에게 능력이란 덕목을 요구하는 대신, 보호하는 제도의 우산을 씌워 주세요. 그리고 그 우산 아래서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퍼붓고 있는 이 시대의 위기들을 함께 견뎌 냈으면 해요. 어쩌면 우리의 어깨마저 비에 젖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차별 대신, 혐오 대신, 각자의 가슴속에 서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을 품는다면, 맞닿은 마음의 온기가 여러분을 지켜줄 거라 믿어요. 이런 맘으로,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을 씁니다.

'위기에 뒤로 남겨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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