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가 '과학자의 눈으로 본 죽음 너머의 세계'지만 '천주교인'의 눈으로 본 사후세계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지은이인 파트릭 델리에가 의사이긴 하지만 가톨릭의 기적 검증국에서 상주 의사로 일하는 독실한 신자이기 때문에 철저히 신앙의 관점에서 쓴 책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빛이 있었다>는 아내의 책상 위에 있던 책으로 호기심에 잠깐 훔쳐봤다.
사후세계의 존재 여부와 임사체험은 UFO와 함께 늘 관심을 끄는 주제다. 1980년대였던 것 같은데 무디 박사가 쓴 <삶 이후의 삶(Life after life)>를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 아직 생생하다. 이 책은 임사체험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불러일으켰다. 그 뒤로 임사체험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까지는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해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빛이 있었다>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사례를 중심으로 임사체험을 설명하면서 이를 가톨릭 신앙인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신과 사후세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가톨릭의 기적이나 성모 발현, 환시, 신비 체험을 임사체험과 연결시킨다. 지은이는 임사체험을 '피안에서 오는 사후세계의 표징'으로 받아들인다. 약간 오버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인용하는 성경 구절도 임사체험과 무리하게 연결 짓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임사체험은 '임상적 죽음과 생물학적 죽음 사이에서 죽어가는 사람의 환시'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체험이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임사체험은 시대와 문명을 초월하는 보편적이면서 개인적 체험이다. 지은이는 임사체험을 아홉 단계로 나눈다.
1. 유체 이탈 또는 몸 밖으로 나감
2. 몸 상태의 변화
3. 터널을 통과함
4. 다른 영적 인간들을 만남
5. 빛의 존재를 만남
6. 지나온 삶을 되돌아봄
7. 평화와 고요를 맛봄
8. 되돌아옴
9. 삶이 변화됨
임사체험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의식은 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지속한다는 결론까지 나아간다. 의식은 뇌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육체를 뛰어넘는 곳까지 뻗어갈 수 있다. 영혼의 존재를 가정할 수도 있다. 물론 증거가 없기 때문에 주류 과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유물론적 입장에서는 죽음이 다가오면 뇌에 산소 공급이 부족해지고 특정 화학물질이 분비되면서 생기는 환각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사후세계가 정말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타인의 임사체험을 듣노라면 죽음의 순간에 무언가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통과의례의 하나로 보이기도 한다.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인생관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세상에 대해 긍정적이 되고, 물욕이 줄어들었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임사체험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죽음이 그다지 두려워할 게 못 된다는 사실이다. 임사체험은 우리가 죽음을 맞을 때에 빛의 존재를 만나면서 평화를 맛본다고 한다(공포를 느끼는 임사체험도 소수 존재한다). 그것이 죽음의 순간에 생기는 생리학적 변화에 따른 것일지라도 인간이 마지막 순간에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위안을 준다. <그곳에 빛이 있었다>가 내용이 알차지는 않아도 임사체험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