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쇳밥일지

샌. 2024. 2. 20. 12:00

노동 현장의 실상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우리끼리 만나 얘기할 때는 요즘 젊은이들이 문제라고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힘든 일 하기 싫어하고 편하게만 살려고 한다, 그러면서 역사의식이나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도 부족하다 등으로 비판했다. 노력만 하면 그에 마땅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아니냐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봤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약자의 희생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며칠 전에 지인이 <쇳밥일지>를 빌려 주었다. 이 책이 2년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지은이인 천현우 씨는 실업고와 전문대를 거쳐 노동 현장에서 10여 년간 계신 분이다. 전기 계통을 공부했지만 중간에 용접을 배운 뒤로 주된 직업은 용접공이었다. 자신의 현장 경험을 책으로 펴낸 것이 <쇳밥일지>다.

 

부제가 '청년공, 펜을 들다'인데 자신의 불우한 성장 과정과 노동 현장에서의 에피소드를 흡인력 있는 필체로 그려냈다. 공장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는 가끔 나오는 산재 뉴스 때 반짝하고 관심을 기울일 뿐 거의 외면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면이 드러나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불평등과 불공정이 떳떳하게 존재하는 곳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회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무척 열악하다. <쇳밥일지>는 이런 현실의 모습을 지은이의 체험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자격을 갖춘 용접공이라면 상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이때껏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실상은 겨우 최저임금을 받는 수준이라는 데 놀랐다. 보도에 자주 나오는 대기업의 정규직 연봉이나 특수 기능을 갖춘 사람들의 수입을 모든 노동자에게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수는 과도한 노동시간과 저임금으로 고단하게 살아간다. 또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아 더욱 힘겨운 삶이 된다. <쇳밥일지>를 읽으며 이런 안타까운 사연들에 가슴이 찡해졌다.

 

같은 노동자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도 큰 문제다. 같은 작업장 안에서 서로 사용하는 휴게실이 다르다는 사실에 놀랐다. 대기업의 '귀족 노조'는 비정규직의 고통은 외면한다. 노동자라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나아가야 할 텐데 기득권화된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 어디에나 판치는 것 같다. 권세를 가진 자의 카르텔을 깨는 것에서부터 사회 개혁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쇳밥일지>에는 고단한 삶 속에서 서로 인간의 정을 나누는 따스한 이야기도 나온다. 가슴이 뭉클해지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찬 겨울에 언 몸을 녹여주는 모닥불 같은 존재가 될 때 삶의 가치가 살아나는 것이리라. 밑바닥에서 역경을 헤치고 나온 지은이는 그런 길을 걸어가리라고 믿는다. 또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의 건투를 빌고 싶다.

 

청강대 졸업 축사에서 지은이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기 위한 '마음의 호신술'이라 부르는 내용이다.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선 무엇보다 냉소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제 삶은 설령 '인간극장'에 나와도 논란이 될 만큼 처절하고 지저분한 불행의 연속이었어요. 그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냉소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여러분과 마주할 수 있는 이유도 그 덕분이고요. 냉소는 인간의 가장 나쁜 감정입니다. 분노나 증오마저 마음먹기 따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지만 냉소는 그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 뿐이예요. 대상을 이해할 생각도 없고 공감하지도 못하니 무슨 발전이 가능하겠습니까. 냉소란 마음의 비만하고 같아서 떨쳐내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다이어트하기 위해선 먹는 걸 줄이고 몸을 계속 움직이잖아요? 냉소하지 않는 방법도 똑같습니다. 남이 떠먹여주는 정보를 곧이곧래로 받아먹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보 과잉을 넘어 폭주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터넷의 알고리즘은 편향된 정보만 쭉 나열해주기 일쑤죠.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사고로 움직이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생각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핵심 목적은 사고의 근육을 기르는 거니까요.

앞으로 여러분이 살아 견뎌야 할 세상은 분명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포기하지 않다보면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면서, 누구도 감히 흔들 수 없는 자신을 완성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 냉소하지 맙시다. 자신과 일상, 동료들과 일, 오늘과 내일을 진심으로 사랑합시다. 내 주변의 내가 의식한 모든 것들이 우연이고 행운이며 이를 소중하다고 여길 때, 비로소 내 삶의 주체가 오롯하게 내가 되고, 그때가 되면 반드시 행복은 따라옵니다. 여러분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겠습니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브레이킹 배드  (0) 2024.03.03
그곳에 빛이 있었다  (4) 2024.02.26
새로운 가난이 온다  (2) 2024.02.14
성난 사람들  (0) 2024.02.08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0) 2024.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