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초나라로 가다가 숲 속을 나오는데
곱사등이가 매미를 줍듯이 잡는 것을 보았다.
공자가 말했다. "당신은 기술이 좋구려! 무슨 도가 있소?"
곱사등이가 말했다. "저야 도가 있습지요.
반 년 정도 구슬 두 개를 간대 끝에 쌓고 떨어뜨리지 않으면
놓치는 일이 적은 편이지요.
세 개를 쌓고 떨어뜨리지 않으면
놓치는 것이 열에 하나지요.
다섯 개를 쌓고도 떨어뜨리지 않아야 줍듯이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그루터기같이 하고,
팔을 잡는 것은 마른 나뭇가지같이 합니다.
비록 천지는 크고 만물은 많지만
오직 매미의 날개만 생각할 뿐
뒤돌아보거나 옆을 보지도 않으니
만물을 매미의 날개로 바꾸어버리지 않는 한
어찌 잡지 못 할 리 있겠습니까?"
仲尼適楚 出於林中
見구루者承조猶철之也
仲尼曰 子巧乎 有道邪
曰 我有道也
五六月累丸二而不墜
則失者치銖
累三而不墜
則失者十一
累五而不墜 猶철之也
吾處身也 若厥株枸
吾執譬也 若枯木之枝
雖天地之大 萬物之多
唯조翼之知
吾不反不側
不以萬物易조之翼
何爲而不得
- 達生 3
잘못 해석하면 삶의 처세훈 정도로 오독할 수도 있는 구절이다. 이 부분은 단순히 기술을 연마한다든가 수련이나 반복 연습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보다는 오히려 정신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매미를 줍듯이 잡는 곱사등이를 통해서 공자가 배운 것이 그것이다.
곱사등이와 매미는 잡고 잡히는 관계가 아니다. 둘은 하나가 되었다. 곱사등이에게 매미는 더 이상 외물(外物)이 아니다. 곱사등이가 매미를 잡지만 잡으려는 욕심이 없다. 행하되 행(行)으로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위(無爲)의 정신이다. 무위와 무심(無心)으로서만 삶의 달인이 될 수 있다.
다만 행하는 그것에 정신을 집중함이 필요하다. 뜻을 분산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일상과 연결지어 보면 순간 순간 자신이 하는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는 일에만 집중한다. 입안에서 씹히는 감촉을 온전히 즐겨야 한다. 마치 곱사등이가 매미의 날개만 생각할 뿐 뒤돌아보거나 옆을 보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이 삶의 달인의 모습이다. 천지는 크고 만물은 많지만 이루지 못 할 것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정신은 광마처럼 날뛰고 있다. 머릿속은 이런저런 근심 걱정으로 가득하다. 이래서는 온전히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의 기쁨을 느낄 수도 없다. 자신을 비우지 않으면 부평초 같은 삶이 될 뿐이다. 이것이 곱사등이로부터 배우는 지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