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조기은퇴의 꿈

샌. 2010. 4. 28. 13:50

사람들이 가진 은퇴에 관한 생각만큼 이율배반적인 것도 없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지겨운 밥벌이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그러나 직장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또한 은퇴라는 말이다. 명퇴든 정퇴든 일 할 거리를 잃는다는 것은 두렵다. 일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또한 일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 도시 직장인들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퇴직을 결정하고 나니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원래 젊었을 때는 10년 정도 일찍 떠나고 싶었다. 말 그대로 조기은퇴를 꿈꿨다. 그런데 세상살이가 맘대로 되지는 않는다. 어쩌저찌하다 보니 5년 정도 남기고 떠나게 되었다. 다른 직장에 비하면 벌써 정년의 나이를 넘긴 셈이다.


마침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조기은퇴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분은 주로 노후에 관계된 경제적 문제에 관해서 나름대로 분석을 했다. 큰 욕심을 버린다면 50세 무렵의 조기은퇴라면 수중에 2억5천만 원 정도가 있으면 된다는 결론이다. 시골이라면 월 50만원으로도 충분히 생활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이 만큼의 돈을 갖지 못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더 많은 돈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은퇴를 실행하지는 못한다. 이분의 말처럼 은퇴는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본인의 결단과 용기라고 생각한다.


밑에 이분의 글을 옮겼다. 참고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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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평범한 사람들의 은퇴연령은 평균 53세~57세 사이란다. 따라서 ‘조기’은퇴가 되려면 쉰 언저리에서 은퇴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먼저.. 조기은퇴 꿈도 꾸지 말아야 할 사람부터 걸러내 보자. 아직 학교에 댕기는 자녀가 있으신 분들, 천성적으로 취미활동에 별로 관심 없으신 분들, 부부사이가 별로인 분들.. 꿈 깨시라. 조기은퇴 택도 없다. 괜히 웬수 ‘삼식이’ 되기 십상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췄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충족하면 된다.


남은 인생 먹고 살 돈.

허긴 은퇴를 하고 못하고는 전적으로 여기에 달려있다. 돈.. 돈도 없이 덜컥 은퇴했다간 중간에 거렁뱅이 늙은이 된다. 실제로 지금 은퇴하고 있는 사람들의 통계를 보면 참담하다. 평균 54.5세에 은퇴를 하며, 은퇴자금은 6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제대로 된 은퇴준비를 할 수 없었던 이들의 생활이 앞으로 어찌 펼쳐질 것인지는 자명하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걸까?


금융기관의 은퇴자금 전문가들이 말하는 은퇴자금은 순수 금융자산(집 제외)으로 10억이라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중산층 생활을 유지하려면 7억원, 상류층 생활을 유지하려면 13억원) 10억이면 백만불 근처의 돈이니 ‘백만장자’가 된 후에나 은퇴하라는 얘기다. 현실감이 잘 오지 않으니 우리주변에 과연 백만장자가 얼마나 있는지부터 알아보자.


2008년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백만장자는 모두 10만5천명이라고 한다. 2008년 현재 1,667만 가구라고 하니 전체의 0.6% 정도 되는 숫자다. 가장(家長) 천명에 여섯명 꼴.. 남강고등학교 6회 동창생 7백여명중에 겨우 서너명 정도란 얘기다. 백만장자가 이렇게 희귀한 걸로 봐서 전문가들이 말하는 ‘은퇴자금 10억’은 아무래도 공포 마케팅인 것 같다. ‘너 설마 아직 10억도 없는 거냐?’ 그러니 은퇴자금 10억은 일단 무시하자. 우리가 직접 따져보기로 하자.


우리나라 중산층 사람들은 은퇴 이후 월 생활비로 월 250만원을 생각한다고 한다. 연 3천만원이다. ①원금을 까먹지 않으면서 ②자금운용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이 정도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지금 7억5천만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금 떼고 그 정도의 수익이 나온다. 하지만 매년 물가 상승률을 4%로 가정했을 때 올해 생활비 3천만원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15년뒤엔 년 5천4백만원이 되어야 하고, 30년 뒤엔 9천4백만이 있어야 한다. 7억5천만원으로 은퇴했다간 중간에 생활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얼마가 있어야 하는지 엑셀을 이용해서 직접 계산을 해보자. 예금이자 5%, 세금 15.4% + 추가분 15%, 물가상승률 4%로 잡고, 잉여 생활비가 있다면 월단위로 다시 정기예금에 넣는 걸로 잡았다. 은퇴초기 250만원의 생활수준을 30년 후까지 유지하기 위해선 뭉칫돈 12억원이 있어야 한다. 서울 강남노른자위에 대형 평수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정도 돈 마련은 쉽지 않겠다. 조기은퇴의 꿈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무슨 방법이 없을까? 보통사람이 큰돈 벌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라고 했다. 결혼을 잘 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는 거.. 조강지처를 버리고 돈 많은 여자와 재혼하면 되겠다. 근데 돈 주고 남자를 사는 건데 평범하고 뭉툭한 40대 후반이 간택될 가능성은 없다. 사기나 갈취는 전문가에게도 성공확률이 낮다. 괜히 시도했다간 감방에서 말년을 보내게 된다.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제 도덕적이고 소심한 40대가 은퇴자금 10억을 모으는 방법은 하나 남았다.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는 거. 로또는 당첨될 확률이 ‘평생 벼락을 대여섯번 맞을 확률’이라고 한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정도의 확률이란 뜻이다. 길을 가다 10억이 든 돈가방을 줍는다.. 얼굴도 모르는 친척이 내게 유산을 남겼다.. 불쌍해서 한번 도와드린 할머니가 알고 보니 ‘찬란한 유산’의 반효정 같은 할머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10억 모아서 우아하게 은퇴한다는 건 보통사람들에겐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는 꿈이다. 따라서 평범한 중산층 가장에게 조기은퇴란 결코 이루지 못할 꿈인 듯하다.


하지만 아니다. 위의 계산은 ‘원금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뽑은 계산이다. 30년 동안 원금도 쓰고 가는 걸로 계산을 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다시 계산을 해보니 8억 정도가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 계산은 30년차에 원금을 다 까먹는 계산이기 때문에 너무 아슬아슬하다. 중간에 병이 들어 병원비로 목돈이 나가거나, 30년보다 더 오래 살면 큰 문제다. 그래서 또 계산을 해보니 8억 5천만원으로 시작하면 30년차에 비상금과 장례비로 1억9천만원 정도의 여유가 된다. 허나 8억5천 역시 여전히 큰돈이다. 하지만 낙담하긴 이르다.


실제 은퇴부부들의 월 생활비는 전국 평균이 140만원에서 250만원 수준이다. 보다시피 위에서 계산한 월 생활비 250만은 수도권 지역에 살면서 품위 있는 생활을 하는 생활비이다. 은퇴를 하고도 굳이 서울에 살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시골에 산다면 같은 생활수준을 월 154만원으로 유지할 수 있다. 그럼 5억5천만원이 있으면 품위 있는 은퇴생활을 할 수 있다. 비상금과 장례비로 1억8천정도의 여유도 있다. 그러나 5억5천도 여전히 큰돈이다. 좀 더 줄여보자.


은퇴하고 나서 시골에 살면서 음악회 영화를 뭐 하러 보나? 시골에 사는데 체육관이 왜 필요한가? 그래서 품위 있는 생활수준을 포기하고 평균수준인 109만원으로 계산해 보자. 그럼 4억원이 있으면 된다. 이렇게 해도 30년 후에 비상금 장례비로 1억3천정도 여유가 남는다. 4억도 버겁다? 그럼 여기서 더 줄여보자.


시골에 살면서 웬만한 거 다 직접 가꾸어 먹고, 자연에 동화되어 산다면 월 생활비 109만원이 들 턱이 없다. 5십만원으로도 살 수 있다. 그럼 2억5천만원만 있어도 된다. 이렇게 해도 30년 후에 장례비로 1억3천정도가 남는다.


더 줄여볼까? 하지만 현재 나이가 육십대 중후반이지 않는 한 더 줄이는 건 어렵다. 2억으로 시작하면 25년쯤 버티다 거지가 된다.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르는데 2억 들고 은퇴는 위험한 모험이다. 따라서 나이 오십 무렵 남자들의 조기은퇴의 최저 마지노선은 2억 5천만원으로 정한다.


대한민국 쉰 무렵의 평범한 가장들이 대개 얼마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획하기에 따라서 조기은퇴라는 게 그리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다. 한번 꿈꿔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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