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겨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기분이다. 요사이 사는 게 그렇다.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었던 적은 없었지만 지금처럼 밍밍한 적도 없었다. 아니, 밍밍한 정도가 아니라 지겹고 싫다. 누구 말대로 수업종이 울리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늙은 소의 심정이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싶다. 왜 이렇게 되었나?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인 탓인가? 예전에 내가 군대생활 할 때는 제대 몇 개월 전부터는 일과에서 열외가 되는 게 관례였다. 군기가 빠진 정신 상태로 훈련을 받다가는 사고를 일으키기 십상이니 예방 차원도 있는 셈이었다. 군대건 사회건 마지막이 되면 일에 열정이 사라지는 건 공통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건 사람에 따라 다르기고 하다. 작년에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분은 나가는 날까지 자리를 지키며 열정적으로 일하셨다. 그래서 남아 있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나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분이셨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힘들어진 것은 가르치는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지 못하는 탓이 가장 크다. 한국의 교육이나 경쟁 체제에 대한 환멸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진다. 교육이 사라진 교육 현장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이것도 사람에 따라 체감지수가 다르겠지만 나는 유독 적응하기 어렵다. 아니, 적응한다는 걸 죽기보다 더 두려워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40대 중반의 폭풍처럼 몰아친 내적 혼란기를 겪고 난 뒤부터였다고 해야겠다. 감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이도 발버둥을 쳤다. 만용을 부리며 뛰쳐나갔다가 결국은 앗 뜨거, 하며 원위치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렇게 다시 빌붙어 살아야 되는 내 자신이 미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을 팔아 밥벌이를 하는 창녀나 양심을 팔고 밥벌이를 해야 하는 내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강철 심장을 가진 사람들은 끄떡없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잘 산다. 밤 11시가 되도록 자율학습이라는 미명하에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가르치는 걸 교육이라고 자랑스러워한다. 죽어가는 아이들의 영혼에 대해서는 털끝만큼이라도 고민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 같다. 그렇다고 나는 내 나름대로의 교육을 펼쳐보았는가?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했는가? 아니다. 그건 내 아킬레스건이다. 그저 소극적 저항을 하며 내 실속만 차린 게 지금까지의 행태였다. 비난하는 체제에 빌붙어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받아먹고 살았다. 그러니 입이 열 개라도 다른 사람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소신과 철학으로 산다.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면 그만이다. 이제 몇 달 남지 않은 직장 생활을 가능하면 재미있게 보내다가 마치고 싶다. 학교와 교육에는 솔직히 별 관심이 없다. 그래도 좋은 학교를 만들겠다고 깃발 아래서 싸울 때가 좋았다. 이제는 사람들이 그럴 기력도 다 잃은 것 같다. 학교는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제 식대로 잘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체제의 학교와 교육은 구시대의 유물로 박물관에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내 귀에는 그런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복이 있다면 내 생전에 박물관으로 찾아가 감회에 젖을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곳을 떠나는 날,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하고 안녕을 할 것이다. 나는 한 줌의 아쉬움도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나갈 것이다. 아마 유일한 후회가 있다면 진즉에 그만 두지 못했던 것일 게다. 그러나 분명 마음 한 쪽은 어둡고 무거울 것이다. 자격 없는 사람이 교단에 서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아이들 가슴에 박은 못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 용서와 속죄는 내 여생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솔직히 선생질 오래 해서 남은 건 죄 지은 것밖에 없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사기 쳐서 치사한 밥벌이를 해 먹지 않았는가. 젊었을 때 교육적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얼마나 비교육적인 것이었는지 나이가 들어서야 알겠다. 어쩌면 그런 줄도 모르고 살 때가 차라리 속 편하고 좋았다. 곧 그런 자괴감에 빠지지 않아도 될 테니까 더없이 행복하다. 지금 같아서는 앞길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도 다 감내할 것 같다. 땀을 흘리며 밭일을 하는 미래의 나를 흐뭇하게 그려보기도 한다. 그런 마음으로 요사이는 버텨나간다. 그러나 밖에 나간들 인생살이가 만만할 리는 없을 것이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고 버텨나가는 것, 모든 사람살이가 다 그렇다고 본다. 오늘은 오랜만에 환한 햇살이 비친다. 창문 밖으로 푸른 하늘, 초록의 나뭇잎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너무 아름답게 빛나서 슬프다. 저 끝없이 펼쳐진 하늘 바다에 풍덩 빠져들고 싶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르페 디엠 (0) | 2010.06.17 |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1) | 2010.06.07 |
내 몫의 고통이 있는 거죠 (1) | 2010.05.12 |
조기은퇴의 꿈 (1) | 2010.04.28 |
학교도 병원도 없는 세상 (0) | 2010.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