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와 청빈의 삶을 사셨던 법정 스님께서 떠나셨다. 장례 의식 역시 따로 관이나 수의를 마련하지 않은 채 진행되었고, 사리를 찾지도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며 마지막까지 말과 행함의 일치를 보여주셨다. 스님이 쓴 책 제목이기도 한 ‘맑고 향기롭게’라는 말이 스님의 일생을 대변하지 않나 싶다. 스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기 위해 자신이 쓴 모든 책을 절판하라고 유언으로 남기셨다. 안타깝지만 스님의 뜻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시중에는 그런 소문이 더해져 사람들이 스님의 책을 마구 사들이는 바람에 품귀현상까지 빚고 있다는 소식이다. 무소유의 가르침과 소유에의 집착 사이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이 스님처럼 완전한 무소유를 실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하고 실천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겠다. 스님이 존경 받는 까닭은 바로 그런 실천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작고 간소하게 살아가는 고민을 한다면,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스님이 쓰신 <무소유>라는 책에 ‘미리 쓰는 유서’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스님의 정신을 되새긴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가 아닌가.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 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라도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 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 같은 걸 남길 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이 세상에 올 때에도 혼자서 왔고 갈 때에도 나 혼자서 갈 수 밖에 없다.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걸어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서로 왕래를 하며 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생명 자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이므로 인간은 저마다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하고 본질적인 실존이다.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善意志), 이것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괴(慙愧)의 눈이 멀고 작을 때에만 기억에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그 한 가지 일로 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가 없고 말을 더듬는 불구자였다. 대여섯 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척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강한 엿장수였더라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자라는 점에서 지워지지 않는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다.
이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저녁으로 “신문이오”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나는 간단명료한 것을 따르고자 한다.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아침에 좋아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 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 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茶毘: 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다 한 일들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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