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7

모퉁이 / 안도현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 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 뭐가 그립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계집애들의 고무줄 끊고 숨을 일도 없었겠지 빨간 사과처럼 팔딱이는 심장을 쓸어내릴 일도 없었을 테고 하굣길에 그 계집애네 집을 힐끔거리며 바라볼 일도 없었겠지 인생이 운동장처럼 막막했을 거야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너하고 어떻게 담벼락에서 키스할 수 있었겠어 예비군 훈련 가서 어떻게 맘대로 오줌을 내갈겼겠어 먼 훗날, 내가 너를 배반해 볼 꿈을 꾸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말이야 골목이 아냐 그리움이 모퉁이를 만든 거야 남자가 아냐 여자들이 모퉁이를 만든 거야 - 모퉁이 / 안도현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한 관찰의 중요성을..

시읽는기쁨 2014.11.02

슬픈 내성천

내 고향의 자랑거리를 들라면 내성천을 빼놓을 수 없다. 내성천(乃城川)은 경북 봉화에서 발원하여 영주와 예천을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길이 110 km 정도의 강이다. 내성천의 특징은 비단 같은 모래사장이다. 흰 모래가 곱고 깨끗해 ‘금모래’라고도 부른다. 강은 부드러운 곡류를 만들며 유유히 흐른다. 산 사이를 휘감아 돌면서 모래사장과 어우러진 강 풍경을 보면 누구라도 시심(詩心)에 젖게 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소월의 시는 바로 내성천을 두고 부른 노래 같다. 강변에서 사람들이 강수욕을 즐기고 있다. 물도리 마을 앞 풍경이다. 내성천 모든 구간이 이런 천연의 휴양지다. 4대강 사업을 한다면서 이 아름..

사진속일상 2011.08.17

추기경의 궤변

"4대강 사업도 발전을 위한 개발이라면 무난하다." "발전을 위한 개발이냐, 파괴를 위한 개발이냐는 자연과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다룰 문제이지 종교의 분야는 아니다." "정치와 경제 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다.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밤새면서 전력을 다하는 전문가들이 있고, 경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문가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하느님 뜻을 헤아리는 데는 밤낮 생각하니까 하느님 뜻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있다." 지난 8일의 추기경 발언이 이랬다. 어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제목으로 비판 성명서를 발표했다. 고령을 감안하고 막중한 직무를 존중하여 추기경에 대한 쓴 소리는 삼가고 삼갔다. 그런데 더 이상의 인내는..

길위의단상 2010.12.11

놀란 강 / 공광규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 놀란 강 / 공광규 그들은 독한 사람들이다. 22조라는 거금을 쏟아부어 강을 파헤치겠단다. '4대강 살리기'라고? 웃기는 소리다. 그들은 지방 토호들과 일부 건설업자들 배를 불리기 위해 강을 죽이려 한다. 자연을 개발과 투기의 대상으로만 보는 저들의 시선이 무섭다. 모든 것이 돈으로만 보이는 ..

시읽는기쁨 2009.07.09

이은하와 지율 스님

'우리나라 아름다운 산천과 물줄기가 있는데 그 경치를 이제까지 버려두고 있었네 모두가 버려진 물줄기 속에(새로운 희망이 있어) 모두가 노력한다면(우린 웃을 수 있어)...' 이렇게 시작하는'한반도 대운하'라는 노래를 가수 이은하 씨가 불러 논란이 되고 있다. 본인도 운하 찬성론자라고 말했지만 가사를 보면 영락없는 '대운하 찬양 송'이다. 하필새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 안 된 민감한 시기에 이런 노래가 나왔으니 그 저의를 의심할 법도 하게 생겼다. 대운하 건설은 후보 시절 이명박의 공약이었지만 그에 대한 논란은 흐지부지 되었다. 지금은 수면 아래로 잠복된 상태지만 신정부 측에서는 언제라도 강행할 태세다. 그런 점에서 운하 건설에 대하여 찬반 논란이 가열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다. 그런 논의 과정을 ..

길위의단상 2008.03.14

못 살아도 돼

늘 서울과 터 사이를 오가는 생활에서 가끔씩 멀리 나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항상 가슴 아프게 느끼는 것이 우리 산하가 너무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딜 가나 산을 자르고, 땅을 파헤치고, 무언가를 세우고 하는 토목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 당위성은 둘째 치고 자연이 너무나 처참하게 훼손되고 있는 모습은 슬픔을 넘어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개의 경우 무지막지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박정희 시대 때부터 개발 바람이 불었지만 최근의 노 정권 들어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다. 신도사만 있는 줄 알았더니 행정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복합도시 등 마치 온 나라의 도시화 작업이 시작되는 것 같다. 특히 지자체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이젠 지역마다 경쟁적으로 돈 되는 일을 유치하지 못해서..

길위의단상 2005.07.11

용서받는 까닭 / 유안진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있고 들리지 않아도 소리내는 것이 있다 땅바닥을 기는 쇠비름나물 매미를 꿈꾸는 땅 속 굼벵이 작은 웅뎅이도 우주로 알고 사는 물벼룩 장구벌레 소금쟁이 같은 그것들이 떠받치는 이 지구 이 세상을 하늘은 오늘도 용서하신다 사람 아닌 그들이 살고 있어서 - 용서받는 까닭 / 유안진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인간이 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고만장해진 인간족 말고 이 말에 동의할 생물은 없을 것 같다. 땅도 하늘도 침묵하고 있지만 가만히 눈 감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잘 살아 보자는 명분 아래 환경을 파괴하고 다른 생명을 멸종시키며 그러고도 당당하게 큰 소리만 치고 있다. 스스로의 묘혈을 파면서도 그걸 지혜로 착각하고 있다. 천성산의 도룡뇽이..

시읽는기쁨 2004.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