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13

호승심

2023-2024 당구 시즌을 마감하는 월드 챔피언십 결승이 어제 끝났다. 남녀부 우승자는 조재호와 김가영 선수였다. 당구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선수들 경기를 구경하는 것은 좋아한다.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승부를 벌이는 선수들의 긴장된 모습과 호흡에서 짜릿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잘 쓰이지는 않지만 호승심(好勝心)이라는 말이 있다. 승부욕과 비슷한 말로 '반드시 이기려는 마음'을 뜻한다. 승부사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인드다. 아마추어라면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지만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 호승심이 없다면 프로의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신을 응원하는 팬에 대한 프로의 사명이기도 하다. 승부를 가려야 할 때 이기려는 마음은 인간에게 내재된 욕망이다. 친..

길위의단상 2024.03.18

위기의 한국 교육

일전에 지인으로부터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인의 딸이 초등학교 교사여서 학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 모양이다. 교실 붕괴라는 말은 내가 현장에 있을 때부터 쓰였지만 지인의 말을 들어보면 차마 교육이란 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우선 아이들이 통제가 안 된다. 수업 중에 제멋대로 돌아다녀도 제어할 수단이 없다. 요사이는 벌을 준다고 교실 뒤나 복도에 세워놓는 것도 인권침해라고 항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아이의 다리를 아프게 하고 학습권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해도 수긍하지 않을뿐더러 심하면 아동 학대로 고소당하기도 한다. 내 아이만 귀한 줄 아는 학부모의 행태는 보도에서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단체여행을 가는 아이 뒤를 따라와 제 아이의 잠..

길위의단상 2023.06.20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호주 이주를 택한 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호주 시민권을 얻기까지의 6년의 과정이 한국과 호주 생활을 대비하며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낸 장강명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이렇게 항변하는 주인공 계나는 자신을 톰슨가젤에 비유한다. 톰슨가젤은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서 사자한테 늘 잡아먹히는 동물이다. 사자가 다가올 때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가 있는데 자신이 꼭 그 꼴이었다는 것이다. 계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취직해 직장인이 되지만 살벌한 경쟁 사회..

읽고본느낌 2021.10.09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드라마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워낙 핫한 드라마라 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데스 서바이벌 게임이라 사람이 너무 많이 죽고 섬찟한 장면도 자주 나온다. 456명이 게임에 참가하여 마지막 승자가 456억을 가져간다. 누가 이런 잔인한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지는 드라마 끝에 나온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다음 회를 계속 보게 되는 마력이 있는 드라마다. 단순한 킬링 타임용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의 빈부 문제를 다룬 주제 의식도 돋보인다. 천민자본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우리나라라서 이런 드라마가 실감 나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 같다.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진 참가..

읽고본느낌 2021.09.28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20세기 말 미국의 대기업 엔론이 '등수 매겨 내쫓기'라는 모델을 도입했다. 직원의 성과를 경쟁의 잣대로 평가하여 상위 20%에게 보너스를 몽땅 몰아주고 하위 10%는 해고했다.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에서 능력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는 '20/70/10 규칙'이 적용되는 사회를 '엔론 사회'라고 부른다. 이런 실적주의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고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문장에서는 '빚으로 산 우울한 향락의 사회' '역사상 가장 잘 살지만 가장 기분이 나쁜 사람들' '우리의 가장 나쁜 측면을 장려하는 사회' 등으로 표현한다. 벨기에의 정신분석학자인 파울 페르하에허가 쓴 는 신자유주의 가치의 지배를 받는 현대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인간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길게 설명한..

읽고본느낌 2021.01.14

말 많은 수능

올 수능도 뒷말이 많다. 고작 몇백 명 대상의 학교 시험에서도 이러쿵저러쿵 시빗거리가 생기는데 한꺼번에 60만 명이 시험을 치르는 수능은 오죽하겠는가. 쉬우면 쉬운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뒷말이 안 생긴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가장 논란이 된 문제는 국어 영역 31번이다. 한 페이지에 걸쳐 긴 지문이 나오고 그에 딸린 문제가 여섯이다. 그중에 31번이 너무 어렵다고 해서 아우성이다. 도대체 어떤 문제인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우선 지문이 이렇게 길다. 근세에 등장한 동서양 우주론에 대한 설명이다.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은 상당히 난해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 31번이 나온다. 이 문제를 보니 만유인력 개념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만유인력은 두 질량의 ..

길위의단상 2018.11.21

엄마가 아이를 망친다

교직에 있으면서 엄마의 지나친 교육열이 아이를 망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결손가정이나 방임 때문에 생기는 문제보다 이쪽이 훨씬 더 심각했다. 자식을 잘 키우려다 오히려 반편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독립심을 길러주고 놓아주어야 하는데 엄마는 끝까지 보살피려 한다. 내 자식은 특별하게 키우려는 엄마의 욕심 때문이다. 아이가 성장하는 건 대견하지만, 엄마에게서 떠나려는 건 받아들이지 못한다. 딸보다도 아들한테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엄마한테서 받은 스트레스로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경우도 여럿 보았다. 겉모습은 그럴듯하더라도 온실 속에서 길러진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어린아이로 남아 있다. 심지어는 결혼한 뒤에도 모든 걸 부모에게 의지하려 한다. 안쓰럽다고 그걸 다 받아주는 얼빠진..

참살이의꿈 2013.08.30

논어[37]

선생님 말씀하시다. "활쏘기 때는 과녁을 주장삼는 것이 아니다. 실력에 차등이 있기 때문이니 옛날에는 그랬던 것이다." The Master said, "In archery it is not going the leather which is the principal thing, because people's strength is not equal. This was the old way." 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 八佾 10 인생을 승부와 경쟁으로 보는 데 대한 경고가 아닐까? 인간 세상에서 공정한 경쟁이란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활쏘기에서도 사람마다 타고난 힘이 다르기 때문에 가죽 과녁을 뚫는 것을 주장삼는다면 옳지 않다. 100m 달리기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몇십 m 앞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

삶의나침반 2013.06.28

경쟁에서 벗어나기

이 세상을 '싸움터'가 아니라 '놀이터'로 볼 수는 없을까? 우리가 경쟁이라는 늪으로부터 한 발을 뺀다면 탐욕으로 작동되는 이 세상의 시스템은 저절로 무너지지 않을까? 경쟁에 관한 강수돌 님의 글을 요약하다. ----------------------------------------------------- 경쟁은 필요하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믿고 있다. 여러가지 폐해가 있지만 발전을 위해 경쟁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경쟁 상황에 빠지면 결코 행복하게 느끼지 못한다.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스트레스를 높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면, 경쟁의 필연성은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체계적으로 교육되고 만들어진 결과다.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분명..

참살이의꿈 2013.02.06

교육과 경쟁

- 학교 다니면서 경쟁(competition)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나요? "네. 체육시간, 특히 100m 달리기 할 때요. 그 외에는 들은 적이 없어요. 예를 들어, 영어를 두고 학생들이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죠? 궁금하네요." - 시험(test)을 쳐서 성적(grade)을 매겨 등수(ranking)를 내어 경쟁의 우위를 선별하지요. 핀란드에서는 시험을 치지 않습니까? "시험은 치는데 성적은 매기지 않습니다. 등수라고 하셨나요? 등수가 뭔가요?" - 네? 등수 모르세요? 시험 성적에 따라 1등, 2등, 3등, 꼴찌를 가리는 것 말입니다. "학교가 시험을 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등수는 왜 가리나요? 시험을 치는 이유는 학생이 해당 과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예를 들어,..

참살이의꿈 2013.01.27

오바마의 민망한 칭찬

"한국에서 교사들은 국가 건설자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도 교사를 한국 같은 수준으로 존경할 때가 됐다."(In South Korea, teachers are known as 'nation builder'. Here in America, it's time we treat the people who educate our children with the same level of respect.) 오바마 대통령이 또 한국 교육을 칭찬했다. 이번에는 국회에서 새해 국정연설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져야 되는데 오바마의 칭찬은 영 생뚱맞다. 한국 교육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느낌이다. 우선 '국가 건설자'라는 명칭부터 낯설다. 이런 말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한국에서 교사가 존..

길위의단상 2011.01.31

소아정신과가 번창하는 시대

동료가 산부인과 의사인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라면서 앞으로는 소아정신과가 가장 각광 받는 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에 산부인과를 비롯한 다른 분야는 많은 부분이 기계 진료로 대치될 것이고, 의사는 기계를 조작하는 기술자의 역할에 머물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것은 비단 의료계 뿐만 아니라 기술문명의 발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료의 말 중에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현재 서울 강남에서 가장 번창하는 분야가 바로 소아정신과라는 것이다. 문제 있는 아이를 데리고 소아정신과 병원을 찾았더니 대기실은 아이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로 만원이고, 두 시간이나 기다려서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주었다. 현재 아이들의 정서불안 증세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

길위의단상 2007.04.24

징기스칸

조선일보가 '징기스칸'이라는 새 잡지를 만드는가 보다. 무슨 잡지를 만들든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그 잡지의 창간호 광고를 보니 영 꺼림찍한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다. 굵직한 글씨로 내세운 취지가 '천재에게 감사하는 잡지, 1등의 철학을 나눠 갖는 잡지, 성공한 사람이 큰 소리 치는 잡지'라 되어 있다. 조선일보의 엘리트주의, 1등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문구인데 성공한 사람들이 앞으로 또 얼마나 더 큰 소리를 쳐야그들은 만족하게 되는지 솔직히 겁이 난다. 잡지 이름을 '징기스칸'이라고 정한 것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징기스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생산성이 높은 지도자였습니다. 13세기 초 몽골 인구는 약 100만 명, 징기스칸은 여기서 약 15만 명의 기마군단을 징집하여 고려에서 지금의 헝가리까지 정..

길위의단상 2004.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