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한국이 싫어서

샌. 2021. 10. 9. 13:08

한국이 싫어서 호주 이주를 택한 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호주 시민권을 얻기까지의 6년의 과정이 한국과 호주 생활을 대비하며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낸 장강명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이렇게 항변하는 주인공 계나는 자신을 톰슨가젤에 비유한다. 톰슨가젤은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서 사자한테 늘 잡아먹히는 동물이다. 사자가 다가올 때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가 있는데 자신이 꼭 그 꼴이었다는 것이다. 계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취직해 직장인이 되지만 살벌한 경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살기 위해서 이곳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에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책 뒤에  나오는 '작품 해설'에서 허희 문학평론가가 진단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이미 '세습자본주의'의 길에 들어섰다. 소유의 유무에 따른 계급사회, 신분사회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면, 이제는 육식동물이 아니면 아예 살아남을 수 없는 정글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내면화된 '사육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 소나 돼지처럼 축사에 가두어져 주인이 주는 대로만 먹고 생존해 나간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다. 치열하게 아귀다툼하는 사방에 커다란 울타리가 쳐져 있다. 이곳의 주인은 약자를 홀대하고 강자를 우대한다. 그는 차별적 포함과 배제의 메커니즘으로 담장 안 쪽의 모든 이를 통제하고 순종시킨다. 자유를 영위하며 사는 줄 알았던 곳이 실제로는 거대한 사육장이었던 셈이다."

 

계나는 행복을 찾아서 한국을 떠나 호주로 갔다. 호주가 한국보다는 인간적이고 따스한 사회라지만 호주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나라다. 하나의 사육장을 탈출해도 또 다른 사육장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소설 마지막에서 계나는 공항을 나오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

 

진짜 행복이 과연 찾아올까? 진짜 탈출은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육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울타리를 허물고 사육장의 주인을 쫓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똑똑한 계나도 알고 있을 것이다. 책장을 덮으며 계나가 호주에서는 진짜 행복을 찾기를 빌었다.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의 계나를 통해 '천민자본주의'에 지배된 한국 사회를 고발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구성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이제 대선 시즌에 접어들어선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 더욱 드러나고 있다. 이마저도 빙산의 일각인지 모른다. 진정한 개혁이나 적폐 청산은 아직 먼 것 같다. 민중의 각성 없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그 길은 더욱 까마득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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