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8

멸공

나는 1970년대에 군 복무를 했다. 그때 우리 부대의 구호는 '필승'이었다. 3년 동안 얼마나 '필승'을 외쳤던지 지금도 머리에 손이 올라가면 자동으로 튀어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멸공'은 익숙하지 않다. 휴전선이 가까운 전방 부대에 갔을 때 '멸공'이라는 구호를 듣고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철책선이 지척이라 살벌한 기운이 후방과는 달랐다. 멸공(滅共)은 공산주의나 공산주의자를 박멸한다는 뜻이다. 반공(反共)과는 어감이 다르다.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과 없애야 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멸공에는 진한 화약 냄새가 풍긴다. 50년 전 군대에 있을 때도 어색했던 '멸공'인데, 최근에 생뚱맞게 되살아났다. 신세계 그룹 부회장인 정용진이 SNS에 '멸공'을 올리니, 대선 후보인 윤석열이 다음날 이마트에서 가서 ..

길위의단상 2022.01.11

소원수리 / 권순진

내 생이 꼬이기 시작한 건 오밤중 담 너머로 쌀 가마니 세 개를 넘기라는 선임하사의 명령을 받들지 못하고부터다 불의에 수발을 들기 싫어서가 아니라 간이 작아서다 그 일을 보조하기 위해 방위 둘을 대기시키라는 지시도 듣지 않았다 우리 부대는 후방 헌병대였고 쌀은 남아돌았다 수감자들에겐 정량이 제공되지 않았으며 헌병들은 외식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다음날 워커발로 조인트를 여러 차례 까였다 동료 사병들도 내가 포크 창에 찍힌 노란 단무지 같은 신세인 걸 다 알고 있다 그들의 비겁 위에 물구나무 선 연민은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찍힌 건 나 말고도 더 있다 소원수리 때 '황소무사통과탕'에 대한 진실을 까발렸다가 필적감정으로 들통 난 K상병이다 나도 종이 앞에서 딸막딸막한 적은 있으나 다른 병사처럼 '현재 생활 만..

시읽는기쁨 2021.12.14

한 장의 사진(24)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제대할 때는 누구나 한마디씩 한 말이 있었다. "제대하면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 군대 생활에 대한 혐오감이 그만큼 컸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군대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데 30년은 걸렸다. 반면에 '군대에 가야 사람 된다'는 말도 있다. 국민정신 교육장으로서 군대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의 말이다. 좋게 말하면 나라와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온몸으로 배우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사람 된다'는 말이 권위적 체제와 이념에 대한 온순한 복종의 의미로 들린다. 외국에 나갔을 때 제일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이스라엘인이라는 얘기를 해외여행을 많이 한 사람에게서 들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일 시끄럽고 안하무인이라는 것이다. 왜 하필 이스라엘인지 의아했는데 의무징병제와..

길위의단상 2017.12.07

한 장의 사진(23)

최근에 어느 육군 대장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사회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군대에 있을 때 나도 1년 가까이 공관병 생활을 했다. 공관병이나 당번병은 점잖은 공식 용어이고, 군대에서는 '따까리'라고 불렀다. 자신을 하찮게 정의해 버리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자조적인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방에서 근무하는 장교는 가족과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군 관사에서 출퇴근했다.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부인은 도시에 따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관급이 되면 사병이 나가서 뒷바라지를 한다. 우리 사무실은 장교 둘, 하사관 둘, 사병 세 명으로 구성되어 단출했다. 사병 중 한 명이 따까리로 나가면 남은 두 사람에게 업무가 과중..

길위의단상 2017.08.15

군대와 학교

친구들과 군대 얘기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입대하게 되는 악몽을 공통으로 꾼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붙잡아가려는 당국과 도망가려는 나 사이의 갈등이 군대 꿈의 기본 틀이다. 꿈을 깨고 나면 식은땀이 흐르기도 한다. 군대가 체질인 사람이 아닌 이상 대한민국 대부분 남자들에게는 군대 경험이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음을 공통적인 꿈 경험이 대변해 준다. 나에게는교직 생활 역시좋지 않은 꿈으로나타난다. 퇴직한 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학교가 꿈에 나오면 영 기분이 언짢다. 수업하러 들어가는데 교실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꿈이 제일 잦다. 미로 같이 얽힌 학교 건물을 따라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교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수업 시간이 끝나 버린다. 또, ..

길위의단상 2011.11.05

한 장의 사진(16)

무슨 팔자인지 법원을 자주 들락거린다. 생소했던 풍경도 익숙해지고 있다. 법원 구내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도 이젠 즐기는 편이다. 사람들의 딱딱하고 근엄한 표정도 여유 있게 살피게 되었다. 지나는 길에 가정법원이 있는데 심각한 얼굴의 부부들이 들고난다. 어제는 건물 귀퉁이에서 한 부부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가 들고 있는 서류 봉투에서 종이를 빼내려 하고 있었고, 남자는 뺏기지 않으려고 밀고 당기는 중이었다. 옆을 지나가는데 남자의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용없어. 이젠 다 끝났어.” 얼마 전에는 구내에서 지율스님도 만났다. 4대강에 관련된 소송에서 이겼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아마 그것 때문에 오신 것 같다. 나에게 법정 경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군대 있을 때 ..

길위의단상 2011.07.13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

오늘 아침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충격적이다. 올초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를 침공했는데 그때 이스라엘 저격병들이 입은 티셔츠의 뒷면 모양이다. 임산부를 총구로 겨냥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위에는 히브리어로 '저격부대', 밑에는 영어로 '1 SHOT 2 KILLS'(1발에 2명 사살)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런 티셔츠를 부대 단위로 주문해서 단체로 입었다고 한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가자 침공에서 이스라엘의 무자비함이 심각하다는 게 드러났다. 팔레스타인 11세의 어린 소년을 인간방패로 삼고,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고, 사람이 들어있는 집을 통째로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등 수많은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22일 간의 침공 동안 숨진 희생자가 1,453 명인데 팔레스타인인이 ..

길위의단상 2009.03.25

한 장의 사진(8)

31년 전 이맘때에 나는 증평훈련소에 입소하여 대한민국 육군 사병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해를 넘긴 뒤의 입대라 다른 사람에 비해 서너 살이나 나이가 많았고 행동까지 굼떠 고생을 많이 했다. 비인간적인 기합을 받으며 내 일생에서 가장 서럽게 울었던 것도 그때였다. 계급 차이를 이용해 사람을 모욕하고 인격을 파괴하는데 쾌감을 느끼는 무리가 그 안에는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의 사병 훈련은 인간의 자존감을 깔아뭉개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것은 절대 복종하는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황당했던 경험은 훈련소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나는 머리 검사에서 불합격을 받고 구내 이발소에 가게 되었다. 군대 이발소 분위기가 살벌한 것은 당연했지만, ..

길위의단상 2007.08.24